매일신문

[책] 1910년, 그들이 왔다(이상각 지음/효형출판 펴냄)

조선 병탄 원흉은 어찌 '이토' 뿐이겠는가

▲쌀 수탈 日 구마모토 농장의 결산서
▲일제 경제 수탈 포스터
▲쌀 수탈 日 구마모토 농장의 결산서
▲일제 경제 수탈 포스터

2003년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가 국내에 개봉됐을 때 관객들은 찬사를 보냈다. 주인공을 맡았던 톰 크루즈 때문이었겠지만, 톰 크루즈가 몸을 의탁하고 있는 가고시마의 용장 사이고 다카모리의 전통 무사도와 장렬한 죽음에 감동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일본 배우 와타나베 켄이 열연한 사이고 다카모리는 모름지기 '꽃이라면 사쿠라, 인간이라면 사무라이'라는 일본 속담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인물이었다.

도쿠가와 막부를 타파하고 메이지 정부를 수립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는 자신의 급진적인 '정한정책'(征韓政策)을 정적들이 반대하자, 분개하며 정계에서 은퇴한 뒤 세이난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에서 그는 패했고 자결했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전쟁신은 바로 이 '세이난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에서는 단지 신식무기와 전통 무사도의 충돌로 보일 뿐이지만, 실제로는 권력투쟁이자 정한론에 대한 인식의 차에서 발생한 전쟁이었다. 어쨌거나 사이고 다카모리는 '조선을 하루 속히 정벌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전쟁으로 일본에서는 전통 사무라이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신식무기로 무장한 현대식 군대가 등장했다.

이 책 '1910년, 그들이 왔다'는 조선 망국과 병탄 시기에 활약했던 주요 일본인 21명의 실체를 추적한다. 그들 중에는 한국에는 악인이었으나, 일본인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에는 '영웅'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위의 사이고 다카모리가 그랬고, 일왕 쇼와 히로히토가 그랬고, 니토베 이나조, 요시다 쇼인 등이 그랬다.

일본 근대화의 상징인 무쓰히토 일왕은 1867년 1월, 고메이 일왕이 천연두를 앓다가 죽자, 15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인들에게 왕은 허울뿐인 존재였다.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일왕은 교토의 구석에 은둔한 채 목숨을 이어가는 존재였다. 그러나 막부를 타파한 존왕파들의 활약에 힘입어 일왕은 '살아있는 신'으로서 일본 제국을 통치하게 됐다.

일왕을 중심으로 일본은 급속도로 근대화에 성공했고, 제국주의 열강이 했던 그대로, 적극적인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무쓰히토 일왕 중심의 일본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급속하게 넘어오는 행운을 안았지만 주변국들에는 불행의 씨앗이었다.

메이지 일왕(무쓰히토)은 욱일승천하는 제국의 영화를 만끽하며 살다가 당뇨병으로 59세에 죽었다. 육군 대장 노기 마레스케 부부를 비롯해 많은 광신도들의 자살이 줄을 이었다. 허울뿐이던 일왕이 '신격화'되었고 숭배의 대상이 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 군인들이 전장에서 전사할 뿐 결코 항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이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천황폐하(일왕)'와 '대일본 제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아서 나라를 잃느니, 죽어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세뇌되었다.

요시다 쇼인(1830~1859)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참수됐지만 신화 속 인물이었던 진구황후를 역사적 인물로 조작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좌절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정한론을 구체화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일본의 개국시조로 여겨지는 진구황후는 4세기경 신라를 정벌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삼한을 지배했던 것으로 꾸며져 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한반도 침략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하는 인물이 진구황후이며 진구황후를 벽장 속의 신화에서 현실세계로 끌어낸 인물이 바로 요시다 쇼인이다. 요시다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 그의 제자들은 나중에 모두 조선 병탄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일본의 태양은 반도 왕국에서 가라앉으면 떠오르고, 그곳에서 떠오르면 또 가라앉는다. 가장 현저하지만 어중간한 정복 시도는 이미 히데요시가 행한 바 있다. 그 이후 일본은 반도에 손을 댈 수가 없었지만 동면중이었을 때조차 조선이 속국이었다는 점을 결코 잊지 않았다. 기억이 집요한 것은 일본인의 특성이라고 불러도 좋다.'

일본의 석학 니토베 이나조는 '조선 문제'라는 글에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한쪽이 성하면 한쪽이 쇠한다고 보고 있다. 국제적인 시각을 지닌 20세기 초의 지식인이자 독실한 기독교도로서 그는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주변국을 미개한 족속으로 매도했으며 식민을 문명의 전파라고 철저하게 믿었던 '타락한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그는 조선의 통신사 파견을 '조공'으로 인식했으며, 1811년 조선이 통신사 파견을 중단했음을 지적하며, 이는 조공을 끊은 것이므로 죄를 물어야 한다고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조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공물이 소소하다 할 지라도, 그것을 통해 그들이 일본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로 삼을 수 있다'는 왜곡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외에도 니토베는 일본 '무사도' 정신을 일본 정신으로 정리했으며 할복의 미학을 논하는 데도 앞장섰다.

일본의 조선 침략에 정치가들과 군인들만이 나섰던 건 아니다. 우치다 료헤이는 민간인 신분으로 조선에 잠입해 정보를 수집하고 불화를 조장한 일본 낭인집단 '흑룡회'의 우두머리였다. 그들은 삼삼오오 조선에 잠입해 엉뚱한 소문을 퍼뜨렸고 일본을 위해 일할 조선인들을 포섭했다. 우치다는 일본 정계의 요인들과 결탁해 조선의 친일파를 지원하고 배후 조종했다. 한마디로 일본은 아래와 위가 혼연일체가 돼 조선 병탄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강제 병탄을 마무리하라는 명령을 받고 조선 초대 총독에 부임한 인물이다. 그는 폭압정치로 일관하며, 집회 결사의 자유를 빼앗고, 조금이라도 일제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자는 검거, 투옥했다. 그는 곳곳에 경찰과 헌병을 배치했으며 조선인들이 곁눈질조차 할 수 없도록 옥죄었다.

책에는 '조선은 일본의 이익선'이라고 주장한 야마가타 아리토모, 조선병탄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을미사변의 막후 조종자 이노우에 가오루, 태평양 전쟁을 성전으로 미화한 고이소 구니아키, 한국을 폄훼하여 일본의 가치를 높인 오카쿠라 텐신, 문화정치를 내세운 노회한 정치가 사이토 마코토,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주장으로 한국인의 영혼을 더럽힌 미나미 지로, 교묘하게 전범의 멍에를 피한 쇼와 히로히토 등 조선을 병탄하고 착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의 성장과 업적, 죄상을 세세하게 짚고 있다.지은이 이상각은 충남 태안 출신으로 1991년부터 '시와 산문'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한국사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이산 정조대왕' '이도 세종대왕' '이경 고종황제'등이 있다. 431쪽, 1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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