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누드 촬영을 가다

카메라를 챙겨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슴이 설렌다.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남자 모델이 올 수도 있다는 어느 사진작가 선생님의 말 때문일까. 평상시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길옆 돌이나 바람에게도 말을 걸고 싶다.

모델은 모두 여섯 명이었다. 선이 아름다운 몸을 가진 여자들이었다. 내 눈은 남자 모델을 찾고 있었다.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모델로 보이는 남자는 없었다. 선생님 곁으로 가서 살짝 여쭤보니 이런, 오늘 남자 모델은 못 왔단다. 순식간에 내 마음은 바람 빠진 애드벌룬이 되었다.

그녀들은 낙엽송이 하늘을 찌를 듯 길게 뻗은 자연 속에 있다.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모델, 허리가 가녀린 모델, 얼굴이 예쁜 모델, 그 속에 전체적으로 몸이 둥근 모델도 한 명 끼어 있었다. 그녀의 몸은 젊지 않았다. 쇄골도 살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아까는 왜 보지 못했을까. 아마도 내 생각이 남자 모델에 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녀의 몸은 신비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큰 가슴과 풍만한 엉덩이는 여체가 생산의 이념으로 상징되던 선사시대의 '뿔배를 든 비너스'를 떠올리게 했다.

너럭바위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녀, 여름산 같다. 나는 겨울산맥 같은 남자의 근육 대신 여름을 찍으면서 위안을 받고 있다. 그녀의 아랫배가 카메라 렌즈 속에 가득 찼다. 생명을 품어서 길러 본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몸이다. 나는 단순히 예쁘거나 날씬한 것 이상의 무엇을 잡아내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체를 그릴 때 보이지 않는 부분들까지 속속들이 스케치했을 뿐 아니라, 자궁 내 태아의 모습도 정확히 그려냈다고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퍼스펙티브(perspective)라고 했다. 인체의 겉뿐 아니라 그 속의 알맹이를 동시에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사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의욕을 가지고 찍은 사진들 앞에서 나는 경악했다. 예술이 사라졌다. 누가 봐도 아마추어인 게 읽힌다.

그도 그럴 것이 고백건대 나는 오늘 누드 촬영이 처음이었다. 욕심만 과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입문 초기에 실수를 하고 실수를 하면서 성장해 나간다. 하지만 나는 오늘 누드를 감상하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기술과 지적 수준이 항문기에 고착되어 있는 나를 보았다. 이런 내가 누드 촬영을 하겠다고 덤볐으니, 남자모델이 안 나왔으니 망정이지 나왔으면 셔터를 제대로 누르기나 했을라나.

임수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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