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성적으로 말한다. 오랜 기간 마당(체육부) 기자를 하면서 이를 체득했다. 스포츠의 주요 덕목인 스포츠맨십 등 스포츠 윤리는 선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경기장과 체육 행정 과정에서 철저히 뒤로 밀렸다. '성적 지상주의'는 프로 스포츠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스포츠에서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 같은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돈벌이(프로)와 대학 진학 수단(아마추어)으로 변질된 스포츠 무대에서 취재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2001년 충청남도에서 열린 제82회 전국체전 때다. 충남은 서울시와 경기도를 2, 3위로 제치고 우승해 전국의 체육인들을 놀라게 했다. 체육인들은 충남이 개최지의 이점을 살리더라도 서울과 경기를 모두 제치는 일은 불가능한 일로 여겼지만 충남은 이를 극복했다. 서울과 경기를 제외한 지역에서의 우승은 전국체전 사상 1970년 이후 처음이었다.
이때 나온 유명한 얘기가 있다. '비난은 잠깐 스쳐 지나가지만 성적은 영원히 기록돼 남는다'는 말로, 체육계에서는 수시로 회자되고 있다.
충남의 우승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체전 당시 경기장 곳곳에서 판정 시비가 잇따랐고, 일부 시·도가 심판과 대회 본부에 항의하다 특정 종목에서 아예 점수를 받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남자 마라톤 경기에서는 충남의 이의수 선수가 우승했는데, 충남이 성적을 내기 위해 내건 포상금 때문에 다른 시·도의 선수들이 그를 추월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객관적인 기량으로 볼 때 일부 선수는 이의수 선수를 추월할 수 있었음에도, 인정상 그가 포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이 대회에서 충남은 우승을 목표로 꿋꿋하게 비난 여론을 버텨냈다. 서울과 경기 등 일부 시도는 "충남의 우승이 편파적인 심판 판정 등에 따른 것"이라며 폐회식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이를 기억하는 체육인들은 별로 없다.
충남 체전에서 16개 시·도 중 12위를 차지, 수모를 당한 경상북도는 이 대회를 교훈 삼아 대대적인 우승 전략을 수립했다. 경북은 다른 시·도에서 우수 선수들을 대거 영입, 2002년부터 좋은 성적을 냈다. 2002년 6위, 2003년 5위, 2004년 4위, 2005년 3위를 한 경북은 2006년 김천에서 제87회 체전을 개최하면서 대망의 우승에 도전했다.
경북은 그러나 충남 체전 이후 5년 연속 종합 우승한 경기도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회 중반 우승의 그림자가 잠시 비취기도 했지만 경북은 충남처럼 비난받을 일을 저지르지 못하고 2위에 만족했다.
11일 개막하는 대망의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전 국민에게서 성원을 받는 것도 4강에 오른 성적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 펼쳐진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성적이라 일부에서 평가절하 하지만, 한국은 '월드컵 4강', 일본은 '월드컵 16강'으로 기억된다. 월드컵을 대표하는 명품이 된 우리나라의 길거리응원도 축구대표팀이 조별리그를 통과하고 16강, 8강, 4강, 3-4위전을 치렀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성적을 내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이끈 경험이 있는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고 장기간의 합숙 훈련으로 체력을 키우는 한편 조직력을 가다듬었다. 이런 노력이 주효했지만 축구대표팀은 맑은 날씨에 물을 뿌려 흠뻑 젖게 만든 그라운드, 개최국의 조별리그 탈락을 방지하기 위해 배려한 심판 판정 등 실력 외적인 요소 덕분에 세계가 놀랄 성적을 낼 수 있었다.
대회 당시 한국에 쓴맛을 본 포르투갈(조별리그)과 이탈리아(16강전), 스페인(8강전) 등 유럽에서는 편파 판정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했다. 그러나 이를 기억하는 국내 축구팬은 없다. 오직 영광스런 순간을 기억하며 이를 자랑할 뿐이다. 국내의 스포츠 방송 채널은 아직까지도 방송시간 땜질용으로 한·일 월드컵 경기를 수시로 내보내고 있다.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은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란 목표를 세웠다. 일부 축구팬들은 조별리그만 통과한다면 역대 원정 월드컵 최고 성적을 넘어서 2002년과 같은 영광도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포츠가 성적이란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경기 외적인 요소에 의해 휘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디 남아공 대표팀의 성적에 목매달지 말고 한 발짝 비켜서서 축구 경기를 재미있게 보시길 바란다.
김교성 스포츠레저부장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경선 일정 완주한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가 지도자급' 존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