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투표일. 헌법 제1조 2항에 명시한 이 나라의 주권자로서 누구에게 어떤 의미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보다 여덟 장의 투표용지를 실수 없이 메우기가 더 어려웠던 것 같다. 투표가 끝나기 무섭게 자기들 입맛에 맞춘 아전인수식 해설을 듣는 것은 더더욱 부담스럽다. 명색이 헌법에 명시된 주권자인데 그럴듯한 각본에 들러리 선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나만의 별스런 감정은 아닐 것이다.
1987년 6월 10일. 헌법상에 명시된 주권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우리 국민들은 궐기했다. 당시 국민을 우습게 보던 오만한 권력은 권인숙을 조사 중인 경찰들이 성고문하였고, 서울대생 박종철을 물고문하여 죽였으며, 이한열의 머리에 최루탄을 조준 발사하여 절명케 하였다. 당시의 치안 총수는 박종철의 죽음에 대하여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해괴한 변명으로 주권자인 국민들을 기만하고 우롱하였다.
당시 입사 시험을 앞둔 대학 4년생으로 도서관에서 시험 준비에 머리를 싸매던 필자는 그 시절 날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하루 시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였다. 머릿수 채우는 정도의 참여였지만 운 좋게도 이 땅에 살면서 민주대장정 출발점의 증인으로 사는 행운을 덤으로 얻게 되었다. 그로부터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국민은 주인된 권리를 확실히 명시한 헌법도 가졌고 세계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을 만큼의 언론 자유도 보장되어 외견상 남부럽지 않은 민주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23년 전 그날에 우리가 꿈꿨던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혹여 말없는 다수의 중산층은 무시되고 포퓰리즘과 선동주의가 판치는 나라에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뽑은 권력으로부터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재산권이 침해받는 것은 아닐까? 혹시 나밖에 모르고 억지와 떼법과 집단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그런 무정하고 비정한 사회가 돼가는 것은 아닐까? 나랏돈을 떡 가르듯이 제멋대로 가르고 관료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고 괴롭히는 그런 못된 나라에 사는 것은 아닐까?
1987년 6월 10일의 완성된 모습은 외형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힘 없고 백 없어도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으며, 국민의 자유와 재산권이 하늘같이 보장되고 선출된 권력들이 그들의 힘의 원천이 어디이며 자기들의 시대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묵묵히 실천할 때 1987년 6월 10일은 완성된 모양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이 땅에서 힘없는 소시민으로 살아가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역사의 증인으로서 투표하고 나오면서 그때의 꿈은 지금 어디까지 와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최동욱(주)대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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