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시간·생리적인 연명을 넘어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 삶이다
모래알이 손가락을 빠져나가듯 삶이 스르르 흘러가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이따금 받는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문득 생을 마치게 되는 걸까 두렵다. '우리는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배우지 못했다. 우리의 수명은 늘었지만 시간 속에 생기를 불어넣지는 못하고 있다.' 밥 헤어무드가 쓴 「우리 시대의 역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국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삶에도 가이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이상 앞선 세대의 삶이 교본이 되지 못하는 시대,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나올 줄 모르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잉여인간이 된 이십대 청년기, 바쁘고 덧없는 삼십대를 지나고 나면 문득 중년이라며 사회적 책임들이 쏟아진다. 소외된 노년의 삶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독신으로 살기에도 짝을 이뤄 살기에도 힘겨운 시대, 생애주기의 15가지 장면으로 만나는 한국적 삶의 풍경 혹은 대안들.
사회학자 김찬호의 『생애의 발견』을 읽는다. '우리의 인생에 삶이 없다'는 머리말이 눈길을 붙잡는다. 저자는 말한다. 삶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다. 물리적인 시간과 생리적인 연명을 넘어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 삶이다….
삶은 시간을 창조한다. 인간은 역사를 만드는 동물이다. 역사는 단순한 사실의 축적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유기적으로 잇는 서사다. 역사는 거대한 집단뿐 아니라 개인의 차원에서도 생성된다.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경험을 이야기로 빚어내고 그 의미가 타인에게 공명될 때, 인생은 '살맛'이 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다. 그 바탕화면에 떠오르는 삶의 흔적들을 건져올려 자아의 빛깔로 아로새길 수 있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최근 일본 병원의 응급실에는 얼굴에 타박상을 입고 오는 아이들이 몇 년째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원인을 분석해 보니 놀거나 뛰다가 넘어질 때 재빨리 손을 짚지 못해서라고 한다. 그 나이에 갖춰져 있어야 할 반사신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전문가들이 역학조사를 실시해 본 결과 초등학생들의 신체조절 능력이 해가 다르게 퇴화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5세에서 10세 정도 사이에 집중적으로 형성되는 기본적인 반사신경이 미숙한 채 성장한 것이다.
한국 아이들도 실외활동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방과 후에 학원을 전전하거나 그나마 노는 시간도 인터넷 게임에만 몰입하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런 생활구조 속에서는 기본적인 신체 발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대학생은 또 어떤가. 요즘 대학에도 상담소를 찾는 학생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죽고 싶다는 대학생들이 점점 늘어난다. 청소년기에 자존감을 충분히 키우지 못한 채 대학에 들어와 본격적인 진로 탐색에 들어서면서 자신이 무척 보잘 것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한국인의 생애 프리즘'이라는 제목으로 『인물과사상』에 1년 남짓 연재한 글들을 다듬고 보탠 것이다. 성장과 자립, 남과 여, 양육과 노화 편으로 나누어 한국인의 삶의 각 시기에 대해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 소통하기 위한 대안 제시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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