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의 포항전투도 낙동강 교두보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혈전이었다. 미 8군은 적의 수중에 떨어진 포항을 탈환하기 위해 의성에 포진해 있던 수도사단에 제17독립연대를 배속시켜 안강·기계지역에서 배수진을 치도록 작명을 하달했다. 여기에다 동해에 떠 있는 미 해군 순양함 미주리호와 구축함대에서 적의 진공로인 흥해 지역에 함포 1천500여발을 쏴 불바다로 만들었고 포항 시가지는 미 공군 전폭기의 파상적인 공습과 포·폭격에 의해 쑥대밭으로 변했다.
그 결과 포항은 마침내 아군 수중으로 다시 돌아와 동부전선의 제1차 위기는 일단 사라졌으나 아군의 희생도 엄청났다. 특히 전투경찰대와 학도의용군의 희생이 컸다. 학도의용군은 거의 매일 200~300명씩 전선에 배치되었으나 17, 18세의 꽃다운 목숨들이 총도 한번 제대로 쏴보지 못하고 하룻밤 사이에 거의 전멸하다시피 해 지휘관들의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다.
아군 3사단은 포항 탈환 이후 안강전투에 투입되었으나 사단장 김석원 장군은 부임한 지 한달도 못 돼 또다시 해임되고 만다. 작전수행상 공훈의 대상에 올라도 시원찮을 텐데 역시 김백일 부군단장과의 알력 때문이라고 했다. 두 장군은 9월 초순 안강에서도 전략상의 견해 차이로 옥신각신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 영덕 강구에서 국군 3사단을 해상으로 몰아내고 남진을 계속해온 적 5사단이 포항 북방까지 밀고 내려왔다. 포항이 또다시 아슬아슬한 위기상황에 몰리기 시작했다. 적 12사단과 766군 유격부대는 아군의 반격 작전에 밀려 일단 포항을 포기했지만 아직도 형산강을 중심으로 포항 근교 강동·안강·기계·건천 일원에 머물러 있었고 피아 간에 출혈을 강요하는 지겨운 공방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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