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복수도 그의 것, 용서도 그의 것

김계희
김계희

동남권 신국제공항 유치 문제로 '밀양'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3년 전에는 영화 '밀양'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유명세를 탔었다. 원작이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로 영화는 원작의 감동이 컸던 만큼 아쉬움이 더 많았다.

소설 속 화자는 아이의 아버지. 약국을 경영하는 부부의 유순하고 내성적인 아이는 어느 날 학교와 주산학원을 거쳐 집으로 돌아와야 하나 오지 않는다. 두 달이 넘어서야 재개발사업이 한창이던 빈 건물 지하실에서 아이는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다. 범인은 주산학원 원장. 그에게 사형이 집행되고 아이의 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소설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신(神)을 통한 구원을 꾀함으로써 벌어지는 신과 인간, 구원과 절망, 속죄와 용서를 이야기한다. 분노에서 체념으로, 그리고 용서를 통한 마음의 구원을 얻으려던 피해자는 그녀보다 신이 먼저 가해자를 용서하고 이제 구원받은 가해자가 오히려 그녀의 참된 평화를 신에게 기도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법과 제도는 그녀에게서 복수의 기회를, 신과 종교는 용서의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신의 섭리와 인간의 한계에서 절망한 그녀는 결국 죽음을 택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의 해외 기사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명사회에 아직도 저런 야만이!"라며 고개를 내젓지만 피해자의 사적 복수를 다룬 영화나 소설은 여전히 인기가 있다. 강력사건의 피의자일수록 경찰의 철통 경호(?)를 받고 피해자들은 "무슨 이런 법이 다 있냐"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피해자도 국가도 법이 정한 형을 넘어서는 제재를 할 수 없다. 죄형법정주의가 피의자 인권 신장에 기여한 바 적지 않으나 피의자 인권을 이야기하느라 정작 피해자는 법에서 잊힌 존재가 되어버렸다.

피해자를 위한 법으로 '범죄피해자구조법'이 있다. 그 존재조차 모르는 피해자가 많을 뿐더러 구조금의 액수는 적고 지급 요건은 지나치게 까다롭다. '김길태 사건'의 피해 유족이 지급받을 수 있는 최고 금액은 3천만원인데 요건 미비로 받지 못한다. '강호순사건'의 피해 유족 또한 강호순에게 재산이 있어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다.

살아남은 피해자 혹은 피해 유족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비단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파괴된 생활터전 복구를 위한 경제적 지원도, 깊게 팬 정신적 외상을 치유할 의학적 지원도 모두 절박하고 부족하다. 피해자 문제를 외면하면서 피의자 인권을 얘기하는 것은 야만은 아니더라도 위선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선은 때때로 야만보다 더 참혹할 수 있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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