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소년을 극도로 잔인하게 죽인 범인이 분명 있습니다."
1991년 3월 26일 대구 성서초교에 다니던 다섯 어린이가 실종됐다. 개구리를 잡으러 갔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1년이 지난 2002년 9월 와룡산에서 유골이 발견됐다. 아이들 중 1명은 머리 부분에 둔기로 30대 이상 맞은 상흔이 남아 있었다. 그 작은 두개골에 움푹 파인 상흔이 여러 군데 드러났다. 이젠 범인을 잡는다 해도 공시시효(살인의 경우 15년)가 만료됐다.
대구경북지역 최대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은 성서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 내년 초 영화로 거듭난다. '수술 중(中) 각성'을 다룬 영화 '리턴'으로 유명세를 탄 누리픽처스 이규만(38) 감독이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으면서 이미 캐스팅 작업도 완료했을뿐더러, 이달 말이면 '크랭크 인'(Crank In, 영화촬영 시작)에 들어간다. 이 감독의 얘기로는 영화 제목의 가제는 '아이들'로 잠정적으로 정해졌다.
주변 영화관계자를 통해 어렵게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인터뷰 섭외에 성공했다. 영화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우려해 대외 인터뷰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상태라 인터뷰에 응할지도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지역의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영화인 만큼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인간 이규만에 대한 조명이 인터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설득했더니 "그럼 만나자"고 했다.
장소는 누리픽처스 사무실이 있는 서울 경복궁 인근 레스토랑. 이 감독은 대구에서 온 기자와 무려 3시간 이상 얘기를 나눴다. 이야기에 빠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인터뷰였다.
◆공소시효를 떠나 범인 잡아야
이규만 감독은 이 사건의 범인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해도 반드시 원흉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이 감독은 3년이라는 시간을 꼬박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쫓아다녔다. 실종돼 살해된 아이들의 부모들을 모두 만나 사건을 영화로 만드는 데 대해 동의를 얻어냈으며, 부모 입회하에 아이들의 유골을 직접 확인했다. 유골이 발견된 후 부검을 담당한 경북대 법의학과 교수도 여러 차례 만난 결과 '분명 범인이 있는 잔혹한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 감독은 경기도 화성지역의 연쇄 살인사건을 추적한 '살인의 추억', 서울 이태원에서 있었던 햄버거 가게의 살인사건을 다룬 '이태원 살인사건'과는 또 다른 형태로 영화화될 '아이들'이 내년 극장에 개봉된 후 사건의 새로운 실마리들이 풀려 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진상이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미 캐스팅은 완료됐다. 사건을 쫓아가는 PD 역할은 박용우가 맡았으며, 실종된 한 아이의 아버지는 성지루, 서울에서 파견된 형사에는 성동일이 캐스팅됐다. 법의학과 교수(전국환)와 아이의 어머니 역할(김여진) 역시 캐스팅이 완료됐다. 아이들이 봄에 개구리를 잡기 위해 야산에 가는 장면이나 당시 와룡산 인근을 재현한 봄 장면은 일부 촬영이 진행됐다.
이 감독은 영화 개봉 전에 김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큰 줄거리를 자세하게 얘기해줄 수 없음을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 "범인에 대한 추적 구도가 큰 반전을 이루면서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스크린에서 눈에 뗄 수 없을 정도로 긴박감이 흐르고 흥미진진하게 스토리가 전개될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그는 이 영화를 또 하나의 운명으로 여기고 있다. 제작사와 투자사가 이 영화의 감독은 '리턴'을 만든 이규만 감독만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지목했기 때문이다.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3년 동안 직접 자료나 단서를 조사한 터라 이 영화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커졌다. 사회적인 반향도 내심 기대하고 있는 이유다.
◆내 인생의 70%는 이현진 감독
이 감독은 지난해 늦장가를 갔다. 동갑내기로 같은 직종에서 10년 동안 만나온 '영혼의 반쪽' 이현진 감독이다. 그는 자신의 부인인 이 감독에 대해 "내 인생의 뮤즈(Mus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문예·미술·과학을 맡은 여신)"라며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영감의 70% 이상을 이 감독에게서 얻는다"고 말했다.
11년 전 한 독립영화제에서 만나 나란히 수상작에 들지 못하면서 동병상련으로 마음이 통하기 시작한 사이. 하지만 영화감독의 길만은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둘은 지속적으로 교류했고, 영화에 대한 영감을 나눴다. 그러다 '리턴'이라는 영화가 탄생하게 됐다. 6년 전 약수터에서 부인인 이 감독이 '수술 후 각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얘기를 해 주는 순간 이 감독의 머릿속에 영감이 번뜩 스쳤다. '그래! 외과의사(김명민)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연인(김유미)에게 수술 중 각성을 겪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하고 얼개를 만들어 가자.'
이규만 감독이라는 이름을 영화계에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도록 만든 작품 '리턴'은 이렇게 탄생했다. 치밀한 시나리오 구성, 복잡한 구조를 풀어내는 솜씨는 이 감독을 일약 스릴러 전문가로 자리 잡게 했다. 성서 개구리 소년 사건 영화의 메가폰을 잡게 된 데도 아내의 역할이 컸다. 그는 "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작사의 요청을 세번이나 고사했는데 이현진 감독이 관련된 자료나 단서라도 직접 조사해 보자고 한 것이 더 큰 흥미를 불러오게 했고, 결국 스스로 더 이 영화의 감독직에 불타오르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 부부는, 비록 이혼한 상태지만 아카데미 감독상을 놓고 당당하게 경쟁한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과 '허트 로커'의 캐서린 비글로우를 연상케 했다. 기자가 이 말을 건네자 이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죠. 물론 이혼은 안 되지만."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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