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장새 작다 하고
이 택
감장새 작다 하고 대붕아 웃지 마라
구만 리 장천을 너도 날고 저도 난다
두어라 일반비조니 네오 제오 다르랴.
두 마리의 새가 비유로 쓰였다. '감장새'는 몸집이 작고 거무튀튀한 초라한 새로 굴뚝새로 불리기도 한다. '대붕'(大鵬)은 단숨에 9만리를 날고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상상의 새다.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변하여 대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장자'에 실려 있다. '구만 리 장천'(長天)은 넓고 높은 하늘이다. 9만리는 가장 먼 거리를 상징하는 말이다. 9가 단 단위 숫자로는 가장 큰 수이므로 큰 수의 대표로 쓰인 것이다. 그러니까 감장새와 대붕은 극단적인 대조의 대상이다.
이 작품을 현대어로 풀어 읽으면 "감장새를 작고 못 생겼다고 대붕아 비웃지 말아라 / 구만리 넓으나 넓은 하늘을 너도 날고 감장새도 같이 날아다니지 않느냐 / 다 같은 날짐승인데 너나 감장새나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가 되는데 감장새가 대붕에게 마음먹고 대드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작품이 나오게 된 두 가지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작자의 개인사와 관련된 것이다. 이택(李澤, 1651~1719)은 조선 숙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좌수사와 평안병사(平安兵使)를 지냈다. 그는 몸이 약했는데 그것을 구실로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함을 받아 한직으로 밀려난 일이 있었는데 그때의 심정을 토로한 것.
다른 하나는 사회적으로 당시 문관을 존중하고 무관을 멸시하던 풍조를 문관은 대붕에, 무관은 감장새에 비유하여 이런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문관이든 무관이든 당시의 가치로 임금에게 충성하자는 목표가 같은데 그 차이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무관이 멸시받는 풍조에 대한 울분의 토로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사이든 사회적 문제이든 간에 울분의 토로라는 점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작품에서 대비되는 감장새와 대붕을 지금도 정부 조직이나 각종 조직 사회에서 상하관계로 비유하면 이 작품을 큰소리로 읽고 싶은 사람 많을 것이다. 또 그게 아니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와 빈자의 관계로 보면 어떨까. 가진 게 적고 많음은 구분될 수밖에 없지만 사람으로서야 그야말로 그 무엇이 다를 수 있겠는가.
문무학 (대구예총회장·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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