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관찰자의 태도를 보였던 알브레히트 뒤러가 이탈리아에 가기 위해 알프스를 넘을 때 그렸던 스케치나, 17세기 네덜란드의 전원 이곳저곳을 애정 깊게 묘사한 루이스달의 유화에도 한결같은 풍경화 특유의 서정성이 있다. 근대인들의 소박한 자연애가 담긴 그림들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고대 로마인들이 남긴 풍경 그림에서도 서정성에 대해 공감하기는 마찬가지다. 풍경에 대한 사람들의 감성은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고 시대를 초월해 심미적 상상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가장자리 한쪽이 헤진 이 작품은 1940년 김천의 한 소학교에 재직하던 김수명의 수채화다. 빛바랜 그림 속 장면은 당시 그가 근무하던 학교 교사(校舍)를 멀리 조망할 수 있는 지점에서 바라본 광경이 아닐까 싶다. 근경의 절반을 차지하는 언덕의 자세한 모습과 들판 건너 산 아래 풍광까지 차근차근 탐색해나간 섬세한 시각을 느낄 수 있다. 구불구불 밭 사이에서 이쪽저쪽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고갯길은 오름세가 가파른 층층의 언덕을 넘어와 건너편 산자락에 안긴 붉은 지붕의 벽돌 건물에 이른다. 운동장에 맞닿은 숲과 저수지, 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골짜기의 키 큰 나무들도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색채는 전반적으로 짙고 붉은 고동색과 탁 트인 짙푸른 하늘색이 인상적이다. 언덕의 드러난 붉은 황토빛도 그렇고 메마른 듯 보이는 먼 산의 모습에서도 풍경 그 자체가 주제일 뿐 사람의 흔적은 없다. 그런데도 헐벗은 양 산하의 정경이 거기에 터전을 두고 식민지 시대를 헤쳐나갔을 이들의 힘겨운 가난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인상은 어딘가 우리 전통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기법 면에서 쓱쓱 그어나간 수채화의 붓질이 수묵화의 손놀림과 닮은 데가 있다. 산등성이나 골짜기의 주름 표현이나 굽이진 오르막길 양옆으로 층층이 올라가며 드러낸 둔덕의 흙더미를 묘사한 데서, 그리고 그 아래 옹기종기 모인 집들의 형상에서도 마치 겸재의 실경 산수를 음미할 때와 같은 정취를 느끼게 한다.
크게 화면을 이등분하는 언덕의 대각선 구도는 들판과 산의 수평적 구조와 어울려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단조롭지 않아, 견고한 구성의 감각도 돋보인다. 감싸인 듯 드러나듯 하는 마을과 골목을 살피던 눈길이 멀리 골짜기와 산으로 옮겨가게 하는 시선 처리도 산수화의 시점 이동에 비견된다. 서양화의 매체와 방법을 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붓질의 터치에서부터 엷고 담백한 채색 방식에 이르기까지 수묵화에 대한 교양과 감수성이 배어나 우리 정서에 너무나 친근하게 와닿는 그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한 '남산정 공립 심상소학교'는 지금의 김천초교로 당시 건물은 6·25전쟁 때 소실됐다. 화가로서의 출발은 이미 대구사범학교 재학시절인 1938년 조선미전에 출품하면서지만 그는 이 고장의 상무관 전시실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아마도 이 작품은 10월에 열릴 그 전시회를 앞둔 여름에 제작한 듯하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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