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거리응원

2002년 옆자리의 낯선 그 남자…지금은 내 남편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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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서웅교(대구 수성구 범어4동)

다음 주 글감은 '공중전화'입니다

♥ 한국 골 환호하다 남편과 화해

원래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2002년 월드컵 때는 집이 두류공원 바로 앞인데도 공원에서 거리응원을 하지 않고 집에서 식구들끼리 조용히 응원을 했다.

그러다 2005년 지금 동네로 이사를 온 후 2006년 월드컵을 맞게 됐다. 그때 남편과 냉전 중이었는데 남편 성격에 먼저 잘못했다고는 하기 싫고 화해는 하고 싶은 마음에 거리응원을 하면서 내 화를 풀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토고전이 열리는 날 오후부터 밖이 시끌시끌했지만 모른 체하고 있었는데 밤이 돼 애들이 하도 나와 보라고 해서 나가보니 남편이 가게 앞에 설치한 대형 프로젝트 빔 앞에서 가게 직원 가족들이랑 동네사람들이 월드컵 경기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인사를 나누고 나니 다시 들어가기도 뭐해서 그냥 돗자리에 앉아 경기를 관람했다. 경기가 열리고 있는 동안 미장원 아줌마도 짬짬이 들러서 맥주 한잔에 응원을 하다 가셨고 세탁소 아저씨도 동참하셨고 잘 모르는 지나가던 사람도 응원에 기세하다 보니 사람들이 점점 늘어 응원 열기도 더해졌다.

남편은 경기 보는 중간 중간 한 번씩 내 눈치를 보며 얼렁뚱땅 화해의 기회를 살폈다. 나도 화해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토고가 먼저 한골을 넣는 게 아닌가. 화해는커녕 돈 많이 썼다고 2차 대전이 벌어지게 생겼구나 생각할 무렵 이천수가 한 골을 넣고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역전골을 넣었다. 순간 우리의 밀고 당기기 게임도 끝이 났다. 서로 부둥켜안고 폴짝폴짝 뛰며 승리의 기분을 만끽했다.

비록 그날 술값에 안주 값에 애들 아이스크림 값까지 돈도 많이 들고 치우느라 힘이 들긴 했지만 우리 선수들이 이겼기에 다 용서가 되었다. 거기다 우리 부부가 화해해서 좋았으며 그 뒤부터 미장원 아줌마는 애들 머리 싸게 깎아주고 세탁소 아저씨는 와이셔츠 하나쯤은 계산에서 빼주시고 동네 어르신들은 우리 애들 한 번 더 신경써 줘서 학원 갔다 늦게 와도 걱정이 조금은 덜어졌다.

이번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이 선전해 우리처럼 싸운 부부 화해도 시켜주고 저출산에 걱정이 많은 우리나라 월드컵 베이비도 많이 만들어주고 모든 국민 하나로 뭉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를 화해시켜준 프로젝트 빔은 무슨 경기가 열릴 때마다 돈이 많이 드는 거리응원 계획을 하는 남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줘버렸는데 월드컵이 열린다니 왠지 그리워진다.

박상희(대구 남구 봉덕동)

♥ 새벽 응원 인파보고 깜짝 놀라

빨간불이 반짝반짝 들어오는 뿔 달린 머리띠와 붉은악마의 티셔츠와 볼에 살짝 그린 태극마크의 페이스페인팅과 짝짝이가 준비되었다면 모든 준비는 마쳤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 대구에서도 흥분과 감동의 물결로 일렁이고 있어, 우리도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응원이라도 하러 가자는 뜻이 모아져서 친구들과 한국시간으로 새벽 4시 프랑스전이 열렸던 6월 19일 대구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새벽에 경기가 시작해 끝이 나면 아침이라 직장을 다니는 우리는 다음날 바로 출근할 준비를 해서 지하철역으로 모였다. 우리의 차림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았다. 그때는 모두 레드로 물들어 있어 웬만큼 해서는 눈이 띄지 않았다. 돗자리와 갖가지 야식을 준비해서 양손 가득 들고 도착한 경기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인산인해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정말로 사람들이 산과 바다를 이루었을 만큼 많았다. 나이, 성별 불문하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외치고 있었다. 대~한~민~국. 겨우 비집고 앉은 자리에서 응원을 할 수 있었고 전반전에 프랑스에 한골을 빼앗을 때의 그 침울한 분위기는 잠시, 후반전 막판에 박지성 선수의 활약으로 한골을 넣어 무승부가 되었을 때 거의 우승한 기분으로 앞뒤 할 것 없이 처음 보는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 껴안고 난리 친 우리였다.

1대1 무승부로 끝이 났지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고, 서로가 뿌듯해했다. 올해도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 을 외치러 갈 준비는 완료된 상태다. 대한민국 축구선수들 파이팅입니다.

강민정(대구 남구 봉덕3동)

♥ 4년마다 이벤트…이번엔 아이도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범어네거리 한가운데였다. 한국과 포르투갈의 조별예선 3차전 경기가 있던 날, 나는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를 꼬드겨 길거리 응원전에 나섰다. 2002년에는 교회, 음식점 할 것 없이 대형 스크린을 마련해놓고 경기를 한마음으로 응원하던 때였다. 친구는 근처 음식점에 가자고 했지만 나는 수고스럽더라도 역사적인 길거리 응원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경기 시작 두 시간 전, 나는 미리 준비해간 물통과 작은 돗자리를 들고 범어네거리로 향했다. 이미 자리 잡고 앉아있는 인파들이 대단했다. 친구와 나는 전광판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응원을 시작했다.

그런데 자꾸만 옆 자리 사람과 팔이 부딪히는 거다. 너무 좁게 앉았나 싶어 옆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은근히 신경 쓰였다. 경기가 한참 진행되고 응원도 절정에 달했다. 드디어 박지성 선수가 후반에 한 골을 넣었다! 나는 친구와 얼싸안고 기뻐했고, 옆 자리 사람들과도 손을 맞잡으며 기뻐했다. 그렇게 함께 응원하다 보니 옆 사람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나고 승리에 취해 집으로 걸어가는데 우연히도 그 사람 친구가 우리 동네에 살고 있어 넷이 같이 걸어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마음이 금세 통했고, 그 후 길거리 응원에서도 만나 함께 응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싹튼 우정은 금방 사랑으로 변했고 2010년, 지금은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월드컵이 우리에게 선물해준 인연이다. 그래서 우리는 4년마다 특별한 감회에 잠긴다. 올해는 6살 아이와 함께 길거리 응원전에 나가볼 생각이다. 연애 시절 애틋한 감정을 회상하면서 말이다.

정수미(대구 수성구 범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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