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대표팀이 그리스와 결전을 치르기 때문에 영화관은 아마 오늘 최악의 흥행을 기록할 듯싶다.
많고 많은 구기 종목 중에서 축구가 가장 단순한 경기일 것이다. 서로 몰려다니면서 둥근 공을 발로 차서 상대편 골대에 넣는 가장 원시적인 이 경기에 우리는 왜 이토록 열광할까. 아마 가장 야생의 동물 본성을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
축구 영화들을 보면 이런 본성이 표출되는 것을 잘 볼 수 있다. 축구에 대한 열광이 가장 부정적이면서 맹목적인 동물적 반응으로 그려지는 것이 훌리건이다. 훌리건은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무리들을 일컫는 말이다. 처음 생길 때는 사회에 대한 불만 표출이었다. 1960년대 영국 보수당 정권하에서 사회복지가 축소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실업자와 빈민층이 양산됐는데 이들이 그 울분을 축구장에서 폭발시켰다.
1963년 리버풀에서 '더 콥'이라는 조직 단체가 생기면서 훌리건의 폭력 사태는 과격해지고 조직화되었다. 렉시 알렉산더 감독이 2005년 연출한 영화 '훌리건스'는 영국의 훌리건스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한 미국 젊은이를 그리고 있다.
하버드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던 맷 벅크너(일라이저 우드)는 코카인을 소지한 룸메이트의 죄를 뒤집어쓰고 학교에서 쫓겨난다. 런던으로 건너온 맷은 누나(클레어 포라니)의 남편 스티브 던햄(마크 워렌)과 동생 피트 던햄(찰리 헌냄)을 만나게 되고 훌리건스 패거리들과 어울린다.
패거리들은 자신들을 '펌'(firm)이라고 부른다. 축구팀의 폭력 자원봉사자들로 팀마다 한두개의 펌을 가지고 있다. "아스날은 팀은 좋은데 펌은 형편없고 토트넘은 팀도 펌도 엉망이야." 팀의 축구 성적과는 또 다른 존재 가치를 부르짖으며 자신들과 팀을 동일시한다.
주인공들은 목숨까지 내놓고 싸우는 그들로부터 폭력의 원시적인 맛을 느끼고 자신도 억눌린 감정을 쏟아낸다. 불안하고 나약한 주인공이 피가 터지고 이빨이 튀어나오는 폭력 속에서 자신감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는 자칫 훌리건스들을 옹호하는 듯하지만 영화는 주인공이 성장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옹호한다.
2002년 승리에 들뜬 한국 응원단 '붉은 악마'들이 지나가는 차를 세우는 것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차를 흔들어도 되겠느냐?"고 묻고는 허락하지 않으면 보내고 허락하면 몰려들어 차를 춤추듯이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내 차가 찌그러지고 부서져도 좋으니 제발 올해 월드컵 대표팀이 그때와 같은 희열과 감동을 주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2002년 6월의 벅차오름은 꼭 다시 보고 싶은 옛사랑처럼 간절해졌다.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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