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우즈베키스탄 전.
경기가 끝나갈 때까지 우리나라는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약관의 한 선수가 한국팀을 패배의 나락에서 건져냈다. 골을 넣은 선수는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세레모니를 펼쳤다.
축구팬들은 그에게 '해결사'라는 별칭을 붙여주며 찬사를 쏟아냈다. 대구시민들은 더 기뻤다. 약관의 그 선수는 1990년대 중반 대구 동구 반야월 일대에서 축구공을 몰던 소년 박주영이었다.
대구의 아들, 박주영이 월드컵 무대를 다시 밟는다. 박주영의 고향 대구는 설렌다. 특히 박주영의 활약을 지켜보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던 '박주영 키드'의 응원은 남다르다.
'박주영 키드'에게 그의 존재는 '전설'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12일 남아공 월드컵의 한국 축구대표팀 첫 경기인 그리스전을 앞두고 박주영에 대한 기대를 한껏 뿜어냈다.
대구 동구 율하동, 신기동 등 반야월 지역에서 박주영은 '반야월의 전설'로 통한다. 그리스전이 열리기 1주일 전부터 박주영을 응원하는 플래카드가 주요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축구를 하기 위해 박주영의 모교인 반야월초교를 택한 이들도 상당수다. 반야월초교 축구부 36명의 학생 중 31명이 축구를 위해 전학 온 학생이다. 이들은 스스럼없이 '박주영 효과'라고 말한다.
축구부 학생들은 박주영이 이번 대회에 일을 낼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박주영을 좋아해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는 배수용(13)군은 "박주영 선배 때문에 그리스 수비수들이 경기가 끝나면 몸살이 날 것"이라며 "박주영 선배가 맹활약을 펼쳐 축구를 하게 된 것을 후회없도록 해달라"고 응원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교를 찾는 선배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김성익(13)군은 "부상없이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학교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길 바란다"고 했다.
청구중·고 후배들의 기대도 남다르다. 박주영이 반야월초교를 거쳐 발군의 기량을 뽐낸 건 청구중·고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청구중·고 축구후배들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평가전에서 박주영이 출전하지 않아 빈자리가 더 커보였다고 했다.
임채학(18)군은 "선배가 잘 되면 우리도 잘 된다"며 "다음 월드컵에서도 후배들과 함께 뛰자"고 말했다. 청구고 황연석(38)코치는 "축구선수가 가장 물이 오르는 시기는 30세 안팎인데 주영이는 아직 20대 중반이다.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며 "큰 무대라는 긴장감 대신 평정심을 유지한다면 원래 잘하던 선수였기 때문에 더 좋은 활약을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박주영 반야월초교 '스승' 시덕준 감독의 편지
"늘 믿고 있는 주영아!"
지난해 말 중식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한 게 마지막으로 본 것이로구나. 부상 때문에 잠시 대구에 내려온 것이었지만 네 얼굴을 보니 '별문제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큰 걱정은 않았다.
실제로 네가 본선 무대에 오를 준비가 끝났다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늘 기대에 부응해왔고 아니, 그 이상으로 해준 제자였으니까.
남아공으로 가기 전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그 느낌은 여전했다. '좋은 활약 펼치고 부상없이 돌아와 다시 인사드리겠다'던 네 말이 더 묵직하게 들렸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넌 계속 커나가고 있단다. 그간 프랑스리그에서 보여준 네 활약을 보며 처음 너를 가르칠 때 스프링처럼 통통 튀어오르던 모습이 겹치더구나. 경험이 쌓이면서 공간을 만들어내고 물 흐르듯 팀플레이를 하는 모습은 원숙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 흐뭇했단다.
그런 좋은 활약이 있었기에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국민들의 기대도 큰 것 같다. 나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찬가지란다. 그러나 스승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은 '이를 악물고 뛰라'는 게 아니란다. 너에게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 기회는 아닐 거야. 무리하지 않길 바란다. 평소 하던 대로 해준다면 좋은 성적이 나올거야. 멀리서나마 응원할 테니 잘하고 돌아오길 바란다. 말주변, 글주변이 없지만 내 마음은 네가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
시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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