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람과 歲月]정년퇴직 앞둔 신종원 대구중앙도서관장

'책읽는 대구' 꿈꾸는 대구 도서관 '산 증인'

집무 중인 대구중앙도서관 신종원 관장.
집무 중인 대구중앙도서관 신종원 관장.

34년 동안의 도서관 근무를 마치고 정년퇴직하는 신종원 대구중앙도서관장은 대구 현대 도서관 역사의 산증인이자, 현재 도서관 문화의 초석을 쌓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977년 학생도서관(현 대봉도서관-당시에는 대구고등학교 옆에 있었다) 사서로 발령받은 이래 지금까지 도서관을 지켜왔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초까지 도서관은 그야말로 공부하는 장소였습니다. 도서관 구성은 열람실이 중심이었고, 이용자 역시 학생, 취업준비생 등 수험생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요즘은 도서관을 찾는 계층도 다양하고, 도서관 이용 목적도 제각각입니다. 과거 도서관이 열람실 중심의 면학공간이었다면 요즘 도서관은 자료 중심, 평생교육, 문화공간 중심으로 변했습니다. 물론 열람실 이용이 도서관의 가장 큰 역할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구에 교육청 산하에는 대구시립도서관과 학생 도서관 두 개밖에 없었다. 또 그때까지만 해도 도서관은 학생들과 수험생들이 공부하는 장소였다. 신 관장은 이미 그때부터 도서관에서 서예교실 한문교실 교양강좌 등을 시작했고, 영화감상, 음악 감상실 등을 시도했다. 당시만 해도 도서관에 문화행사 관련 지원은 전무했고 신 관장은 자신의 월급을 떼서 문화행사를 열고 각종 영화나 음악자료는 미문화원이나 다른 시설에서 빌려왔다. 오늘날 도서관이 다양한 주제의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는 데 그가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신종원 관장은 1999년 두류도서관장으로 발령받은 것을 시작으로, 서부도서관(2번), 효목 도서관, 중앙도서관 등에서 관장으로 근무했다. 그가 관장으로 가는 곳마다 도서관은 환골탈태했다. 낙후된 도서관은 깨끗한 공간으로, 특성이 없는 도서관은 특색을 갖춘 도서관으로, 산만한 도서관 분위기는 정숙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두류도서관은 시설이 열악하고 노후화돼 있었어요. 시설 개보수를 원했지만 예산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직원들이 나서서 세제로 건물 안팎벽을 모두 씻어냈어요. 벽에 산뜻한 그림도 그렸고 페인트칠도 직원들이 직접 했습니다."

그는 예산이 부족하다, 혹은 없다는 이유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았다. 부족하면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그의 평생 근무 신념이었다.

2001년 서부도서관장으로 부임해서는 지역 최초로 '향토 문학관'을 만들었다. 지역 문학인 몇 명의 사진, 책 몇 권 덩그러니 있는 '향토 문학 코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서부 도서관만의 독특한 향토 문학관을 만든 것이다. 이를 위해 몇번이나 교육청을 찾아갔고 끝내 예산을 따냈다. 또 향토 문학인들의 옛 자료를 모으기 위해 소장자를 찾아다니며 사정도 했다. 고서점을 통해 시, 수필, 소설 등 작품집을 구입했고 지역 작가들의 소장 작품을 기증받기도 했다. 육필 원고, 편지, 사진, 작품집, 유품 등을 모으고 연대표도 만들었다. 소설가 윤장근씨는 서부도서관에 향토 문학관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흔쾌히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향토문학 자료를 기증해 주었다. '향토문학관'은 한국 문단을 이끌어온 향토 문인들을 한자리에 모음으로써, 한국 문단사는 물론이고 향토 문단사와 인물을 아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신 관장은 같은 대구라도 지역별 도서관마다 특성이 있고 이용자의 요구가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주민의 요구에 가장 부합할 수 있는 도서관, 주민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가보고 싶은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말했다. 이용객이 별로 없었던 효목도서관을 주민 밀착형으로 탈바꿈한 뒤에는 이용객이 급증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전국 문화기반 시설 평가' 부문에서 대구 처음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난히 책 읽기와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신 관장은 두 번째 서부도서관으로 발령받았던 2008년부터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시작했다. '서구는 지금 독서 중, 책으로 하나 되는 행복도시'를 슬로건으로 서구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한권의 책을 지역 주민들이 함께 읽고 토론하며 공동체 의식을 쌓자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도서 선정위원을 구성해 책을 선택하고 북클럽(독서 동아리) 모집, 독후감 공모와 시상, 작가 초청 강연회 등을 열었다. 또 무개차를 동원해 서구 일대를 다니며 '책 읽는 서구' 캠페인을 벌였다.

현재 이 운동은 대구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2009년에는 '대구는 독서 중, 책으로 하나 되는 대구'라는 기치 아래 대구시민 모두를 대상으로 책읽기 운동을 시작했다. "책 읽는 대구를 꿈꿉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다 함께 책을 읽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구 사람하면, 아 똑똑한 사람들, 창의적 감성이 넘치는 사람들, 책 많이 읽는 사람들, 문화적인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으면 합니다. 대구 출신이라는 브랜드만으로도 세계 어디에서나 '최고' 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열심히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종원 관장은 자신은 비록 이제 정년퇴직을 하고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책 읽는 대구'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을 읽으면 사람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확신했다. 대구시민들이 책을 읽는지, 안 읽는지 은퇴 뒤에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고도 했다. 신종원 관장은 대구 교육계에서 처음으로 여성 부이사관(지방 3급)으로 승진했으며 6월 29일 공로 연수를 시작으로 12월 31일 은퇴한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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