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동국대에 불교 인재 양성에 써달라며 1억원의 장학금을 건넨 인물이 있었다. 대구 수성구 대륜고 인근의 화엄불교대학원 회주 진귀 스님이다. 1억원은 대형 사찰에서나 가능한 꽤 큰 돈이다. 하지만 스님이 불자들에게 화엄경을 가르치는 대학원은 조그마하고, 매달 임대료도 낸다.
스님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냥 전할 뿐이라고 한다. 선문답으로만 들린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지만 말이다.
사찰의 살림에 가장 큰 원군은 부처님 오신날 연등 보시금이다. 그런데 스님은 보시금을 소아암 환자 수술비, 세계 기아어린이돕기 후원금, 결손가정어린이 장학금, 무료급식에 모두 써버린다. 5년째다. 스님의 보시에는 종교와 국경이 없다. 무료 급식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망우공원에서 한다. 적잖은 무료급식소와 달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순수하게 불자들이 보시한 후원금으로 운영한다. 여기엔 어린 아이들의 용돈도 적잖다. 금요일은 화엄경과 육조단경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만 한다. 단순히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주는 것이며, 밝은 마음을 나누는 수행의 공간이어서다. 토요일은 지나가는 사람도 마음을 나누고 싶으면 언제든 무료급식에 참여할 수 있는 때다. 스님은 "본래 내가 해왔던 것을 할 뿐이며 안 하던 자는 본래할 것을 안할 뿐이다"라고 했다.
무료 급식은 찐 밥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공원에서 직접 밥을 짓는다. 밥맛도 최고이고, 가난한 자는 물론 지나가는 사람 누구든 밥을 먹고 있다.
화엄불교대학원은 부처님의 자비 실천 수행도량이다. 불경 중 가장 심오하다는 화엄경과 육조단경을 배운다. 비교하자면 대학을 졸업한 뒤의 석·박사 과정이라고 할까. 매주 화요일은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설법한 화엄경 강의, 매주 목요일은 중국 선종의 6조인 혜능선사의 설법인 육조단경 강의, 매주 금요일은 참선 수행, 매주 월·화·수요일은 예불 후 수행 점검 등을 한다. 거의 고행(苦行)수준이랄까. 대학원을 운영하기 위해 원생들을 모집한 적이 없다. 그냥 알음으로 올 뿐이라고. 스님은 "배우는 자는 스스로 배운 만큼 행하고 있는 지를 점검하고, 나를 포함한 가르치는 자는 스스로 가르치는 대로 행하고 있는 지를 점검할 뿐"이라고 했다.
스님은 26년 전 출가했다. 오랜 기간 토굴과 산 속에서 수행만 했다.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종단이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종단과 소속을 내세우면 종교를 초월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현재 내가 뭘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5년 전 불자곁으로 왔다. 바로 화엄불교대학원이다.
스님은 지금하고 있는 것 모두가 회향(廻向·불도를 수행한 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어 자타(自他)가 함께 불과(佛果)의 성취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고인 물과 시간은 갇혀 있으면 썩고 재물도 쌓아두면 썩듯이 그냥 전할 뿐이요, 들어온 것이 나갈 뿐입니다."
회향과 자비는 일반과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포교와 나눔은 목표와 목적을 갖고 있지만 회향과 자비는 조건과 목적이 없다. 종교를 떠나 조건이 없이 세상에 나가 회향과 자비를 할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불이(不二)라고도 한다. 산 속에 있으나 여기(사회)에 있으나 똑같다. 부처와 중생은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요즘 안동의 불교대학원에도 들러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스님은 "종교를 가지기 전보다 종교를 가진 이후의 마음이 더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여건이 된다면 교회와 성당에서도 서로의 열린 마음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