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컬 프런티어] 경북대 재활의학과 이양수 교수

1년간 서지도 못한 환자, 걸어서 퇴원시킨 재활 지존

▲스스로 엉뚱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경북대 재활의학과 이양수 교수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보행 재활치료기기를 개발했다.
▲스스로 엉뚱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경북대 재활의학과 이양수 교수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보행 재활치료기기를 개발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걷기가 힘들어집니다. 노화나 질병, 사고 때문이죠. 스스로 걷고 움직이지 못하면 생활의 큰 부분을 잃는 셈입니다. 만약 전 세계 사람들이 일 년 더 걷도록 만든다면 그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아마 돈으로 환산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치일 것입니다. 제가 하는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지금 걷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할 겁니다."

◆의사이자 발명가

경북대 재활의학과 이양수(46) 교수는 스스로 엉뚱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학병원 의사이자 발명가다. 경북대병원에서 근무한 지 10년이 되던 2004년부터 재활 중에서 보행에 관련된 특허를 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재활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그다지 빛은 나지 않는 보행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재활의학과 교수로 근무한 지 10년이 지나면서 기존의 재활치료기기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죠."

2004년에 특허 출원 2건에 이어 2005년에 특허 출원 5건, 실용신안 1건을 냈다. 모두 특허청 승인을 받았다. 2006년에는 미국에 2건의 특허를 출원해 그 중 '하지 재활치료장치 및 훈련방법'이 올 4월 21일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등록 결정을 받기도 했다.

"특허에 대한 관심은 고교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손톱깎이에 덮개를 씌워 손톱이 튀어나가는 것을 막는 방법을 고안해 특허사무소를 찾아갔었죠. 직원에게서 비슷한 특허가 있다는 말을 듣고 출원을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하필이면 재활의학과를 택했느냐는 물음에 "수술하는 게 겁이 나서 못했다"고 답했다. 의사치고는 엉뚱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수술에 대한 부담이 컸습니다. 자칫 환자가 잘못되면 어쩌나 두려웠죠. 환자 전체를 돌볼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내과, 정신과, 재활의학과 중에 재활의학을 택했습니다." 원래 가우디 같은 건축가를 꿈꿨던 그는 주위의 권유 때문에 얼떨결에 의사가 됐다.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 뚜렷한 꿈도 없었다. 하지만 재활의학은 의사의 사명감과 잊고 있던 발명가의 기질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뇌졸중 발병 후 일 년이 지난 환자가 제게 와서 '제 다리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제가 걸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힘 내십시오. 충분히 걸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일 년 더 걸을 수 있다면

처음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다짜고짜 슬라이드부터 보여줬다. 그러면서 대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고가의 재활치료 장비가 실제 재활치료에서 그다지 효과가 없음을 설명했다. 단순히 '효과 없을 것'이라는 추측이 아니라 해당 기기를 이용해 재활치료를 한 결과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관련 논문을 일일이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환자의 움직임을 컴퓨터 모니터로 보게하고 이를 이용해 균형훈련을 하는 기기는 40년 전부터 개발됐습니다. 신체의 수평 움직임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제공하죠. 그런데 2006년 논문은 이들 기기가 보행기능을 향상시켰다는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신체 무게중심의 좌우 및 수직이동을 이용해 게임을 수행하고, 균형능력을 키우는 하지 균형 훈련기를 개발했습니다."

사실 그가 발명한 것은 너무도 상식적이어서 왜 여태까지 저런 치료기기가 나오지 않았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단순해 보이는 기구지만 효과는 뚜렷했다. 뇌졸중 발병 후 6개월이 지나도록 걷지 못하는 환자에게 균형 훈련기와 함께 일반 치료를 함께 한 결과, 기존 치료의 2, 3배에 이르는 효과를 얻어냈다. 아울러 경사대에 레일과 바퀴를 설치해 누워서 다리운동을 할 수 있는 슬라이딩 재활기구 훈련을 적용한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2009년 대한재활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이들 연구는 포스터 부문 383개 과제 중 우수연구 후보 13개 과제 중에 선정됐다. 미국 특허결정을 받은 발명은 슬라이딩 보드와 균형훈련기를 결합한 것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보행 훈련만큼은 전 세계에서 경북대병원 재활의학과가 가장 잘 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만든 기구를 이용해 전 세계 사람들이 일 년 더 걷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의사와 환자 모두 걸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효과는 말할 필요가 없다.

◆일 년 이상 마비환자 걷게 하는 것이 핵심

2007년 가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6개월가량 여러 병원을 떠돌다가 이 교수를 찾아온 한 60대 할머니 환자가 있었다. 오른쪽 다리가 마비돼 걷기는커녕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상황. 이 교수는 자신이 발명한 재활기구를 이용해 경북대병원에서 4주, 파티마병원에서 4주간 재활치료를 받게 한 뒤 결국 걸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는 뇌졸중 환자에게 다리 마비는 걷는 기능을 회복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손이나 발목을 위로 움직이려면 뇌의 피질 척수로가 필요하지만 엉덩이나 무릎 관절의 움직임은 피질 척수로 외에 여러 신경경로를 통해 조절이 되기 때문. 결국 하나의 신경경로가 손상돼도 다른 경로를 통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뇌졸중 초기에 재활을 통해 걷고, 말하고, 인지할 수 있도록 호전시키는 것은 어쩌면 재활의학과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문제는 6개월 또는 일 년 이상 마비된 상태로 있는 사람을 걷도록 만드는 것이죠. 걷기는 공부와 비슷해서 할수록 나아집니다."

물론 그가 모든 환자를 걷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뇌간이나 소뇌에 손상을 입어서 균형감각을 잃어버린 환자는 사실 보행기능을 회복하기가 힘들다. "대뇌 반구에 손상을 입은 뇌졸중 환자라면 절반 이상은 걷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특허가 많이 있으니 돈도 많이 벌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허 발명 중에 사업에 성공한 것은 1%도 채 안 됩니다. 특히 재활의학 분야는 현행 의료보험 체제에서는 돈과 거리가 멀죠." 이 때문에 대학병원들은 재활치료 기간을 4주로 한정한다. 환자를 오래 입원시키다고 해서 수익이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들은 좀 더 치료를 받고 싶어한다. "2차 병원쪽에 제가 발명한 재활기구를 설치하도록 해서 추가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이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제 기구를 상용화해서 전 세계 병원에 공급한다면 기꺼이 아이디어를 제공할 생각이 있습니다. 보다 많은 환자가 재활치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그 이상 뭘 바라겠습니까?"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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