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 장석남

저 새로 난 꽃과 잎들 사이

그것들과 나 사이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무슨 길을 걸어서

새파란

새파란

새파란 미소는,

어디만큼 가시려는가

나는 따라갈 수 없는가

새벽 다섯 시의 감포 바다

열 시의 등꽃 그늘

정오의 우물

두세 시의 소나기

미소는,

무덤가도 지나서 저

화엄사 저녁 종 지나

미소는,

저토록 새파란 수레 위를 앉아서

나와 그녀 사이 또는

나와 나 사이

미소는,

돌을 만나면 돌에 스며서

과꽃을 만나면 과꽃의 일과로

계절을 만나면 계절을 쪼개서

어디로 가시려는가

미소는,

웃음이 다소 범박한 세속의 방식이라면 미소는 조금 더 상승의 기류라 하겠다. 물론 이때의 상승은 수직이 아니다. 미소는, 온갖 불순물을 걸러내고 소리마저 넘어선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나라이다. "저 새로 난 꽃과 잎들 사이/ 그것들과 나 사이"에 나누는 고요한 눈빛의 메시지. 그러니까 미소는, 입술의 영역이 아니라 눈의 차원인 것이다. 천리안이거나 축지법이거나, "새파란" 미소가 만물 위/사이를 종횡무진, 미끄러지듯 스쳐간다. 미소가 닿는 곳마다 때죽나무 꽃그늘처럼 환해진다.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하고 거듭 던지는 시인의 물음이란, 사실은 독자에게 내미는 산수국의 헛꽃 같은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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