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승리 뒤 쓰레기 더미…시민의식은 패배

동성로 두류공원 등 10만명 뜨거운 함성…술병 음식물 방치 '2002년

남아공월드컵 한국 대 그리스 경기가 열린 12일 오후 대구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는 거리응원에 참가한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남아공월드컵 한국 대 그리스 경기가 열린 12일 오후 대구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는 거리응원에 참가한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12일 남아공 월드컵 첫 경기인 그리스전 승리로 대구경북이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지만 수만 인파가 모인 거리응원장 곳곳에서는 볼썽사나운 '뒷모습'을 남겼다.

이날 거리응원단은 지난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거리응원전 때 경기 후 주변 쓰레기를 치우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것과 달리 마치 응원장을 쓰레기 처리장으로 여기듯 쓰레기를 마구 버렸다. 일부 응원단의 몰지각한 뒤풀이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시민의식 실종에는 응원장 관리기관들의 준비부족도 한몫했다. 두류공원 코오롱야외음악당, 동성로 등에는 1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몰렸지만 화장실이나 쓰레기 집하장이 전무했고, 안전요원조차 터무니없이 부족해 시민 불편이 컸다.

◆패배한 시민의식

12일 오후 11시. 거리응원전이 열렸던 두류공원 코오롱야외음악당은 쓰레기천지였다. 먹다 버린 닭뼈, 맥주캔 등이 잔디밭에 널브러져 있었다. 일부 청소에 나섰던 시민들조차 혀를 찼다. 이다혜(20·여)씨는 "우리 자리 주변의 쓰레기를 줍다가 옆에도 쓰레기가 있기에 치웠더니 그 옆에 더 많은 쓰레기가 있어 포기했다"고 했다.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 역시 시민들이 버린 응원도구와 쓰레기들로 넘쳤다. 행사 주최 측이 쓰레기를 되가져가자며 나눠준 비닐봉지도 쓰레기로 방치됐다. 이날 밤 생긴 쓰레기양은 5t으로, 평소 주말보다 3배나 많았다. 중구청 환경미화원은 "응원의 열정이 큰 만큼 시민의식도 좀 컸으면 한다"며 "2002년에는 응원 뒤 정리도 깔끔해 세계에서 칭찬을 받았는데 지금의 모습은 그때와 딴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구청 환경미화원들은 오전 1시까지 1차 청소를 마무리한 뒤 2시부터 동성로 주변을 다시 청소해야 했다. 뒤풀이에 나선 일부 시민들이 새벽까지 머물며 술병과 오물, 전단 등을 마구 버렸기 때문이다. 환경미화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거리응원의 여파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13일 오전 코오롱야외음악당 주변 곳곳에는 쓰레기가 봉분처럼 쌓여 있었다. 더운 날씨에 악취까지 심했다. 주민 박교영(43)씨는 "시민들 모두가 이용하는 공간임을 알 텐데 자기가 즐겼던 자리를 제대로 치우지도 못할 거라면 거리응원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압사사고 일어나지 않은 게 다행

대구시가 거리응원 장소를 마련하고도 진행요원 및 통로 확보 등 시민 편의를 배려하지 않은 행정도 문제였다. 시민들은 진행요원들이 통로 확보 등 안내를 돕고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청소에 동참한 서울 사례를 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동성로도 사정은 비슷했다. 통로 확보가 전혀 안돼 시민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상민(36)씨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났다가 30분 동안 인파에 갇혀 움직일 수 없었다"며 "압사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했다.

시민들은 화장실을 찾기 위해 전쟁을 벌이다시피했다. 코오롱야외음악당 여자화장실 앞에는 'ㄱ'자로 긴 줄이 늘어섰다. 남자들은 공원 숲을 화장실로 삼아야만했다.

여자화장실 앞에서 만난 신효정(57·여)씨는 "화장실 사용하는데 40분이 넘게 걸렸다"며 "큰 행사를 치르면서 시민 편의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율하체육공원도 사정은 비슷했다. 경기시작 1시간 전부터 운동장 주변 화장실은 미어터졌다. 30m 이상 줄을 서는 것은 기본이었다.

코오롱야외음악당에서 거리응원을 한 박주연(35·여)씨는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가는 것도 문제지만 쓰레기를 모아둘 곳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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