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수연의 그리스 리포트]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의 선전

12일 오후 그리스 아테네 시내에는 우리 교민들의 승리의 함성과 그리스 국민들의 패배의 탄식이 교차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팀의 압승에 삼삼오오 모여 경기를 관전하던 아테네 시민들은 침묵을 지켰다. 2004년 유럽선수권대회 우승의 영광 재현을 기대했던 시민들은 1994년 월드컵 첫 출전 무득점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며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현지 유력 일간지 TaNea신문은 'Without Soul Without Passion'(그리스 축구의 영혼과 열정이 사라진 승부)이라는 제목을 스포츠면에 크게 싣고 실망스러운 경기 결과를 보여준 그리스 대표팀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리스 네티즌들 또한 각종 인터넷 사이트 댓글을 통해 "그리스 대표팀 감독으로 장기 집권한 오토 레하겔 감독의 운이 다한 것 같다. 선수 기용 및 교체 타이밍이 적절하지 못한 레하겔 감독이 물러날 때가 됐다"며 대표팀 감독에 대한 불신을 나타냈다. 16년 만의 월드컵 출전으로 높아져 있던 그리스 축구 대표팀에 대한 기대감은 한국과의 첫 경기 패배로 인해 더 큰 실망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온 듯했다.

반면 그리스 아테네 현지 교민들은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아테네 시내의 한 식당을 빌려 다같이 힘을 모아 응원한 한국 교민들은 이정수, 박지성 선수의 연속골에 환호하며 "대~한민국!"을 크게 외쳤다. 한 교민은 "아테네에 있는 교민들이 그리스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 한국 대표팀의 선전은 어느 때보다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인으로 자부심을 느낀다"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글썽거렸다. 교민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아르헨티나전 응원까지 이어가 한국의 16강 진출에 작은 힘이나마 보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필자가 올림픽 전문화 학위과정을 밟고 있는 이곳 그리스 올림피아에도 한국의 승리가 주말 내내 화젯거리가 됐다. 5대륙 22개국에서 IOC 산하 국제올림픽아카데미(IOA) 학위과정에 참여한 스포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한국팀의 선전을 축하했고 조심스럽게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16강 진출을 예상했다.

그리스 교수진과 직원들은 한국의 승리를 축하하면서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독일 2부리그 선수로도 잠깐 활약한 적이 있는 IOA 명예교수 게오르나르디스 코스타스(50) 교수는 "한국이 경기 모든 면에서 나은 플레이를 펼쳤으나 그리스 축구팬 입장에서 여러 모로 아쉬운 경기였다. 그리스 대표팀이 여러 차례 실점 상황에서 수비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쉽게 골을 내줬다. 2004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예선 첫 경기에 패했지만 이후 선전해 우승을 이뤄낸 것처럼 이번 월드컵에서도 막판 뒤집기를 기대한다"며 16강 진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그 외 본선 진출국 출신 전문가들의 반응 또한 남달랐다. 자신을 박주영의 팬이라고 칭하는 프랑스 스포츠 행정가 줄리엔(24)씨도 한국의 승리를 함께 기뻐해 주며 한국의 16강 진출을 확신했다. 그는 "한국의 압승을 예상했다. 평가전을 통해 보여주었던 한국 축구는 스피드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한국은 시종일관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운동장을 지배했으며 박지성, 이청용, 박주영 선수의 활약이 돋보였다. 경기 내용면에서 프랑스-우루과이전보다 훨씬 다이내믹한 경기였다"고 평가했다.

※필자 정수연(23)씨는 스포츠외교연구관을 목표로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유학 중이며 국제올림픽아카데미(International Olympic Academy) 초청 올림픽전문화학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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