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부부젤라

도구는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짓는 특징적 요소다. 야생이라는 약육강식의 환경에서 치명적인 공격력이 떨어지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도구를 채용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수렵시대에 신호 수단은 집단의 소통 능력을 키워 사냥의 성공률을 배가시켰다. 뿔나팔 같은 소리를 내는 도구는 위협적인 야생동물을 쫓아내거나 사냥감을 집단 공격할 때 상호 긴밀한 협력을 가능케 한 수단이었다.

현대 스포츠에도 이런 흔적이 남아있다. 직접 경기에서 뛰지는 않지만 응원하는 팀을 위해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대풍선이나 롯데 자이언츠의 전유물이 된 오렌지색 쓰레기봉투, 잘게 찢은 신문지 응원이 그런 경우다.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팬들이 펼치는 형형색색의 비닐 우산 퍼포먼스나 한신 타이거스의 노란 풍선 날리기도 마찬가지다.

사냥이나 전쟁이 스포츠 경기로 대체된 현대에서 이런 도구와 행동은 집단 동질성을 확인하는 수단이다. 같은 팀원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아이콘은 뭐라 해도 부부젤라(Vuvuzela)다. 부~ 부~ 소리를 내는 부부젤라는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보편화된 응원 도구다. 남아공 최대부족인 줄루족에서 유래된 전통악기로 긴 원뿔 형태의 나팔이다. 사냥을 나가거나 전사들의 용기를 고취시키기 위해 썼는데 원래 상아나 소뿔로 만들지만 지금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게 유행이다.

하지만 경기장마다 크게 울리는 부부젤라 소리로 지구촌이 떠들썩하다. 한꺼번에 불어 대는 부부젤라 소리가 거의 소음에 가깝기 때문. 소음 측정치가 무려 120~140㏈에 달한다. 전기톱(100㏈)과 기차소음(110㏈)을 넘어서고 헤비메탈밴드(150㏈)와 맞먹는다니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급기야 부부젤라 사용을 금지하자는 안티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월드컵 각 경기장을 점령해 공포의 대상이 된 부부젤라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부부젤라를 아프리카 전통으로 인정한다. 규제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다. 지구촌 최대의 축구전쟁에서 쥐죽은 듯 조용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하지만 부부젤라 소리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 관중이나 TV 시청자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니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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