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승리의 축배' 광란의 밤… 경찰, 취객과 전쟁 치렀다

사소한 일도 욕설·폭력…곳곳 노상방뇨·거리 취침

대한민국 응원신화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됐지만 몰지각한 뒤풀이 문화가 오점으로 남았다.

한국이 그리스전에서 승리한 12일 밤부터 13일 새벽까지 2만~3만명의 응원 인파가 한꺼번에 몰린 대구 중구 동성로와 달서구 두류공원 코오롱야외음악당 지역 파출소와 지구대는 숨가빴다. 승리를 자축하며 술에 취해 광란의 밤을 보내는 일부 시민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삼덕지구대

"술 취한 사람이 택시에서 난동 중. 출동 바람." 13일 0시 25분 중구 삼덕지구대. '칙칙'대는 무전기를 타고 긴급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택시 안에서 구토를 하는 승객과 제지하는 기사 간 실랑이가 벌어진 것.

"한국이 이겨서 기분이 좋아 술 한 잔 했는데 뭘 잘못했냐, 경찰이면 다야?" 이모(34)씨는 술에 취해 욕설을 퍼부었다. 급기야 주섬주섬 아래옷을 내리더니 노상 방뇨를 하기 시작했다. 지구대에 도착해서도 행패는 계속됐다. 신발과 양말, 바지를 벗어던졌고 책상 위에 올라가 고함을 질러댔다. "담배 갖고 오란 말이야."

오전 1시 10분쯤에는 한 30대 여성이 얼굴을 부여잡고 울면서 지구대로 들어왔다. 술 취한 거리응원객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했다. 뒤따라 들어온 붉은 악마 티셔츠 차림의 박모(24·여)씨는 "저X이 먼저 우리한테 욕하고 가방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말이 꼬여 더 이상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순찰차를 타고 오전 6시까지 동성로 주변을 돌아보니 거리 곳곳에는 고성과 말싸움이 오갔고 벤치에는 취객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오전 2시 20분쯤 중구 한 성당 입구. 두 명이 술에 취해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 옆에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가로수를 붙들고 구토를 하고 있었다. 동성로에서 사주를 보고 있다는 L(52)씨는 "경기가 끝나고 보니 쓰레기와 술 취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더라. 모르는 사람과 같이 응원을 하다가도 술 마시고 나면 시비가 붙었다"고 했다.

이날 오전 3시쯤 지구대 맞은편에서 만취한 남자가 도로가에 주차된 차량 밑에서 자는 모습이 발견됐다. 택시기사 김모(52)씨는 "차 밑으로 사람 다리가 나와 있어 깜짝 놀라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날 삼덕지구대에서 처리한 사건은 폭력 8건, 주취자 12건이나 됐다. 평일보다 4배나 많았다. 경찰은 "현장에서 훈방으로 끝난 것까지 포함하면 모두 100건이 넘는다"며 "응원 후 2차로 술을 마신 뒤 시비가 붙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두류파출소

12일 오후 11시 30분. 파출소 안이 북적였다. 붉은 티셔츠 차림의 20대 남성 8명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욕설과 고성이 이어졌다. 정애경 순경은 "두류공원에서 축구를 보고 왔다는데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어 11시부터 계속 저러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경찰관의 중재로 1시간 만에 돌아갔지만 폭행, 음주사건이 잇따랐다.

13일 오전 3시. 음주교통사고 제보가 접수됐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우방랜드 앞 도로. 가벼운 접촉 사고처럼 보였지만 운전자는 만취한 상태였다. "축구를 보고 기분이 좋아 맥주 두 병을 마셨다"고 말한 최모(39)씨 눈은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오전 5시 30분. 한 취객이 사무실 의자에 큰 대자로 뻗었다. "택시 타고 아무데나 가 달라고 한 게 죄가 됩니까?" 인기척을 느끼고 일어난 이 남성은 의자에서 떨어졌다 올랐다를 반복하며 언성을 높였다.

한 경찰관은 "우스갯소리지만 한국이 16강에 진출할까 봐 두렵다. 이런 시민의식이라면 큰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노경석 인턴기자 nks@msnet.co.kr

황수영 인턴기자 swimmi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