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의 치안 부재로 월드컵 취재진과 응원단 대상 사건·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기자 역시 대낮에 '봉변'(?)을 당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그리스와의 경기 후 13일 베이스캠프인 루스텐버그로 이동하기에 앞서 포트엘리자베스 숙소 부근에 혼자서 물건을 사러 갔다가 정복을 입은 해변관리사무소 직원에게 5란드(남아공 화폐단위, 1란드는 160원 정도)를 뺏기는 해프닝을 겪은 것.
연이은 사건사고로 한번도 개인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대낮에 숙소 근처인데 무슨 일 있겠느냐'며 혼자 다녀온 게 화근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 주변 공원이 예쁘게 조성돼 있어 큰길에서 벗어나 안쪽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해변관리사무소 바로 뒤쪽이라 안전할 것이라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관리사무소를 지나는데 기다렸다는 듯 직원이 다가왔다. '정복까지 입은 직원인데 괜찮겠지' 하며 잠시 대화를 나눴다. 한국 축구와 월드컵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어느 순간 그가 내 손가방을 자꾸 쳐다보는 걸 느꼈다. 왠지 불안해 "이제 일행이 출발할 시간이어서 가봐야겠다"고 했더니 그는 점심시간이라 배가 고픈데 돈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계속 "헝그리, 헝그리"하며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해못한 척 하며 자리를 뜨려고 하자 노골적으로 "3란드만 달라"고 했다. 순간 황당함과 두려움이 함께 몰려왔다. 호텔 부근이었지만 뒷길이라 주변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얼른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동전 몇 개가 잡혔다. 그 중 한 개를 꺼냈더니 5란드짜리였다. 돈을 건네고 태연한 척 인사한 뒤 돌아서 빠르게 걸었다. "고맙다" "잘가라"는 인사말이 들려 잠시 손을 흔들어주고 큰길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취재진 가이드에게 얘기했더니 운이 좋다며 "경찰도 강도로 돌변하는 곳이 남아공이어서 정복 입었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고 했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대부분 일용직인데 일당을 받으면 당일 술 마시고 다 써버려 밥을 못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무나 붙잡고 "몇 란드만 달라"고 구걸하는 경우가 적잖은데 5란드로 끝내 다행이라고 했다. 세계인의 축제장에서 5란드를 주고 얻은 씁쓸한 경험이었다.
남아공 루스텐버그에서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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