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젤라, 소음이냐 문화냐.'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남아공 축구팬들의 손엔 어김없이 '부부젤라'(Vuvuzela)가 들려 있다. 부부젤라는 긴 깔때기처럼 생긴 나팔로 '뿌~~'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남아공의 부족 중 하나인 줄루족 말로 '시끄러운 소리를 만든다'는 뜻의 부부젤라는 주로 축구 경기장에서 사용된다. 스위스 보청기 제조업체인 포낙이 부부젤라의 소음도를 측정한 결과 127㏈(데시벨)로 전기톱(100㏈), 잔디깎이 기계(90㏈)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월드컵을 맞아 부부젤라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경기장은 물론 길거리, 심지어 공항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부부젤라를 불어댄다. 특히 축구 경기장에서 부부젤라의 위력은 최고조에 달한다. 경기 전부터 '뿌~뿌~' 울어대는 소리는 경기 시작 후 더욱 강력해져 90분 내내 경기장을 점령한다. 이 때문에 바로 옆 사람과도 말을 할 수 없을 정도. 경기장으로 가는 셔틀버스 환승장에서는 공짜 귀마개를 나눠주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선수들의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리오넬 메시는 나이지리아와의 경기 후 "귀머거리가 된 것처럼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경기에 집중할 수가 없다. 많은 선수들이 부부젤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고, 프랑스 대표팀의 주장 파트리스 에브라도 "오전 6시부터 불어대는 부부젤라 소리에 잠을 자기 힘들다"고 불평했다.
상황이 나빠지자 대니 조단 남아공 월드컵 조직위원장은 13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부부젤라를 금지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경기 시작 전 국가 연주 때와 안내 방송이 있을 때만 불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부부젤라 옹호론도 만만찮다. 남아공에 월드컵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경기의 긴장감을 증폭시키려면 경기장을 뒤덮을 듯한 응원 소리가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이는 남아공의 고유 응원문화이기 때문에 금지시켜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제프 블래터 회장도 "나라마다 다양한 형태의 응원이 있는데 부부젤라는 아프리카의 독특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부분"이라며 옹호했고, 릭 음콘도 월드컵 조직위원회 대변인도 조단 위원장의 인터뷰 후 "부부젤라는 남아공과 축구에 있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라며 금지 반대의 뜻을 밝혔다.
12일 한국과 그리스의 조별리그 B조 첫 경기 때도 부부젤라는 한국에 호의적으로 작용했다. 한국 응원단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꽹과리와 북을 치면 현지 팬들은 부부젤라로 리듬에 맞춰 '뿌~뿌뿌뿌'로 화답했다. 또 한국의 득점 찬스 때 상대팀 반칙을 심판이 인정하지 않자 현지인들은 입을 맞춘 듯 '뿌~뿌뿌뿌'를 불며 항의해 한국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줬다.
남아공 루스텐버그에서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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