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회(78) 할머니는 대구 남구 봉덕시장에서 '시장 지킴이'로 통한다.
김 할머니는 45년간 시장 좌판을 지켜 왔다. 할머니의 가게 크기는 실제 16.5㎡ 남짓하지만 가게 안은 물건이 쌓이고 쌓여 영업공간인 좌판은 3.3㎡(1평)에 불과하다. 하지만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삼베, 실타래, 버선, 우산, 손톱깎이, 아이들 장난감….
슬레이트 지붕의 가게 천장에는 철사를 꼬아 만든 녹슨 걸이 쇠에 가방, 빗, 버선, 우산, 실타래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추억 속에나 있을 법한 검은 고무줄, 이름 모를 고약, 반짝이 액세서리도 진열대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영천서 22세때 대구로 시집와 봉덕시장에는 서른 살 갓 넘어 왔으니까 벌써 45년이 지났지."
좁은 가게 안은 물건이 쌓이고쌓여 있지만 김 할머니는 이곳만큼 편한 곳이 없다. 의자 밑에는 전기장판이 깔려있고 팔만 뻗으면 무엇이든 손에 잡힌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졌어. 전기 코드만 꽂으면 금세 따습는데…."
할머니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녀(4녀2남)들을 훌륭히 키워냈다. 경북대 대학원까지 마친 딸들은 이미 50대 초·중반을 넘어섰고 두 아들도 장성했다.
"큰아이는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고 막내아들은 독일에서 법학 박사 공부를 하고 있어."
손님들은 할머니 좌판을 '만물상'이라 부른다. '남대구 상회'란 어엿한 간판이 내걸렸지만 상호를 잃은 지 오래다. "여기가 요즘 천 냥 백화점의 원조야. 말만 해 다 찾아 줄 테니까."
없는 게 없는 할머니 좌판은 모든 것이 명물이다. 그러나 으뜸 명물은 따로 있다. 50년 가까이 된 나무 주판이 그것. "요놈(주판)은 나하고 같이 늙었어." 할머니는 큼지막한 주판을 꺼내든다. 알마다 반지르르하게 닳아 윤이 난다. "한번은 작가라는 양반이 주판알 튕기는 내 모습을 보고는 사진을 찍어가더라고. 이렇게 오래된 주판은 첨 봤다면서 말이야."
주판 덕분일까?. 할머니 기억력은 남다르다. 물건 가격과 위치, 처음 오는 손님들 얼굴까지 모조리 머릿속에 담고 있다. 물건이 다 널브러져 있는 것 같아도 내 기억엔 따로 정리가 다 돼 있지."
할머니의 장사 철학은 박리다매다. 1만원짜리 물건이라도 300원 남짓의 이문만 남긴다. 할머니는 "장사는 인심이고 입소문이 퍼져야 한다"며 "그래야 손님이 단골이 되고 나중에는 친구가 된다"고 했다.
주위에서 죽으면 땅 한 평 가질 거 왜 늦도록 일을 하느냐고 만류도 하지만 김 할머니는 정든 잡화상을 접고 싶은 마음은 없다.
"소일거리가 있어야 용돈도 안 그립고 건강하지." 실제 할머니는 여든이 눈앞인 나이인데도 몸이 튼튼하고 외모도 6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김 할머니도 점점 쇠퇴해 가는 시장을 보면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힘 닿는 데까지 좌판일을 놓치 않겠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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