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나오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를 국회의원이 문제시 삼았다.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비이락(烏飛梨落)처럼 그 코너는 곧 막을 내렸다. 사람들의 의견들은 참으로 다양했고, 더욱이 그 국회의원은 인기 방송인 출신이라 더욱 논란이 되었던 것 같다. 필자는 그 일을 그저 세상의 많은 일 중에 하나로만 취급하고 넘긴 터라, 어떤 일들이 더 자세하게 벌어진 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세계는 1등만을 기억한다!'라는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된 S기업의 광고카피가 잠시 떠올랐다. 그 코미디언이 그냥 통닭이나 맥주업계의 광고에서 그런 유행어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피식 웃고 넘긴 적이 있었다.
다시 1등 장터가 섰고, 늘 기다리던 한국은 붉은색으로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4년마다 그렇듯, 이동통신사들은 대한민국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순수 응원단체인 '붉은악마'를 상업적 마케팅에 사용하고 있으며, 어떤 매체들은 월드컵 대전이라고도 부른다. 이동통신사를 포함해 패션의류 등의 다양한 기업들이 엠부시(Ambush)마케팅으로 은근히 홍보를 꾀하고, 틈새를 노리는 니치(Niche)마케팅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2002년엔 붉은악마의 공식 응원가와 구호들이 응원의 통일감을 주었다면, 2006년부터는 각 기업의 다양한 홍보에 따라 2002년과 같은 통일감은 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것들이 올해는 더해지고 있다. 중계권을 독점한 S방송사가 FIFA 규정을 근거로 단체시청을 제한했기 때문에, 공공장소에서의 방영을 위해서는 S방송사로부터 공공장소전시(Public Viewing)권을 사야 되는 것이다. 특정 기업들이 PV권을 사서 콘서트와 같은 이벤트를 치른다면 당연히 자사의 홍보가 가장 주된 목적이 됨은 기업의 입장에선 당연하다. 이미 붉은악마의 응원가 대신 각 기업에서 따로 만든 응원가들이 여기저기 불리고 있으며 티셔츠와 응원구호 역시 각 기업의 홍보 수단이 되고 있다.
앨 리즈와 잭 트라우트의 마케팅 불변의 22가지 원칙이라는 책을 보면 '더 좋은 것을 만들기보다는 원조가 되어라'는 것과 '먼저 내놓지 못했다면, 유사하지만 새로운 영역의 선구자가 되어라'는 마케팅 원칙들이 있다. 그렇지만, 앨 리즈와 잭 트라우트가 말하는 또 다른 원칙은 '선구자가 아니더라도 선구자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라'이다. 많은 떡볶이 집, 순대국밥 집, 따로국밥 집들이 자기네들이 앞서 원조라고 하는 것은 그런 마케팅 원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이용하는 마케팅도 그렇게 변하는 중이라 보인다. 한국 축구대표팀 응원의 원조이자 선구자는 순수한 비영리 동호회인 붉은악마이다. 그런 붉은악마의 순수하고 뜨거운 응원문화는 몇몇 기업들의 마케팅에 활용되고, 붉은색 응원문화의 원조 이미지를 곧 넘어서서 언젠가는 원조 응원단체로 인식될 기세이다.
그렇다면, 지금 붉은색 광고를 띄우는 기업들은 왜 붉은색 팬(Fan)을 만들지 못하고, 4년마다 두 달 남짓의 이벤트를 통해 붉은색 관중(Spectator)만을 만드는 것일까. 요즘의 코미디는 과거와 같은 기-승-전-결의 형태가 아닌 결-결-결-결의 형태로 마구 터지는 웃음을 주어야 살아남는다고 한다. 4년의 기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 요즘의 시청자며, 관중이며, 소비자이다. 이번에 A이동통신사의 응원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이 4년 뒤에도 A사의 이벤트에 참여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따라서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꾸준히 '대한민국 축구응원'을 통한 마케팅을 하는 것이 붉은색 소비자들을 계속 자사의 상품에 노출시키는 방법이다. 또한 충성도가 낮은 관중을 4년에 한 번 동원하는 것보다는, 지속적인 마케팅을 통해 충성도가 높은 팬(High-Loyalty Fan)으로 만드는 것이다. 충성도가 높은 팬들이 많으면 광고홍보비를 줄이고도, 수요를 꾸준히 늘릴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투입은 줄고 효과는 늘어난다. 동시에 축구에 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촉진된다. 기업들이여, 4년 뒤를 기다리지 말고 매일 매일 붉은색과 함께 홍보함은 어떠한가?
한준영·영남대 체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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