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톨스토이와 세 여자 이야기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

올해로 서거 100주년을 맞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구절이다. 그가 살았던 19세기는 '사랑=결혼'이라는 등식이 막 발명되어 이미 이루어진 사랑 없는 결혼과의 충돌이 불거지던 때였다. 자유연애, 공공연한 불륜, 아내의 이혼 요구 등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안나는 오빠의 불륜으로 인한 그들 가정의 불화를 해소하고자 모스크바로 오고 그 기차역에서 브론스키를 만난다. 그는 그녀의 억눌린 생기에 이끌리고 그녀는 이제까지의 도덕적이나 죽어있는 삶(결혼) 대신 부도덕하나 생기 있는 삶(불륜)을 택한다. 그 선택은 기차역 철길 투신이라는 안나의 비극적 죽음으로 끝난다.

'크로이처 소나타'에도 부정(不貞)한 아내의 죽음이 등장한다. 엄밀히 말해 '죽임', 부정한 아내를 죽인 한 남자의 독백이 이어진다. 아내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연인과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한다. 주인공에 의하면 그 곡은, 특히 그 첫머리의 프레스토는 무서운 것이다. 음악은 영혼을 향상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흥분시켜 현재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게 한다. 작곡 당시 작곡가의 심경으로 무차별적으로 이끎으로써 무시무시한 에너지와 감정의 폭발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사랑 없는 결혼은 견딜 수 없고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할 수 없다면 이혼할 수밖에 없다는 귀부인의 행로가 흥미롭다.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톨스토이의 아내는 악처의 대명사로 회자된다. 톨스토이는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급진적 사상을 몸소 실천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아내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톨스토이는 34세에 18세의 소피아와 결혼했다. 한 번 읽기도 버거운 '전쟁과 평화'의 여러 필사본은 그녀가 받아쓴 것이다. 다툼 끝에 모든 저작권이 소피아에게 양도되었다고 하나 그녀는 장성한 자식들의 결혼을 앞둔 어머니였다. 악처(?) 소피아의 잘못은 평범한 그녀가 위대한 톨스토이의 아내가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비록 톨스토이와의 결혼이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소설 속의 두 여자는 물리적 죽음을, 현실의 소피아는 악처라는 사회적 죽음을 맞는다. 세 여자의 가정은 제각기 불행한가? 모든 행복한 가정이 엇비슷한 게 아니라 모든 가정이 엇비슷하게 행복해 보이는 건 아닐까. 들여다보면 제각기 나름대로의 문제를 안고 있고 그걸 불행이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가정은 불행하다 할 것이다. 아직 불행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행복이라고 속고 있는 가정만 행복할 뿐이다. 늘 그렇지는 않다는 걸 모두가 알지만 가족사진 속 모든 가정은 행복하다. 그리고 우리는 맘만 먹으면 그런 가족사진을 몇 장이고 찍을 수 있다.

김계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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