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나비야 청산 가자

나비야 청산 가자

무명씨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작자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청유형 어법으로 창작된 이 작품은 가락이 경쾌하기 이를 데 없다. 경쾌한 가락에 깊은 의미를 담은 것이다. 『청구영언』 육당본과 『삼가악부』(三家樂府)에 전한다. 신위(申緯)의 '소악부'(小樂府)에 한역되어 전하기도 한다. 굳이 현대어로 풀어 읽을 필요도 없이 원문 그대로 읽어도 어려움이 없다. 단지 초장의 '범나비'가 '호랑나비'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것만 알면 해석의 물꼬가 트인다.

작자가 가고자 하는 '청산'(靑山)은 보통의 푸른 산이나 높은 산은 아니다. 그 청산은 세속과 먼 자연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어야 깊은 맛이 느껴진다. 초장의 나비보고 가자고 그랬다가 범나비도 가자고 했다. 이것은 '함께'라는 의미가 강한 것이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되는 것이다. 초장에서 그것이 개인이 아닌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장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고 했는데, 그것은 청산에 가는 길이 그리 가깝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며, 종장에서 '푸대접'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는 또 청산에 가는 일이 쉽지만 않고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예견을 하는 것이다. 청산이 멀고 가는 일이 힘들어도 꼭 가야 한다는 결의까지 들어있다.

그 청산은 사람이 풍기는 바람과 먼지. 즉, 허위와 간악이 전혀 없는 세상이다. 허위와 간악으로 더러워진 속세를 부인하는 의식,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철학이 기조가 되어 청산을 사람이 살만한 이상향으로 보는 것이다. 현실에서 참 많은 실망을 한 사람이 이 작품을 썼을 것 같고 그래서 작자의 이름이 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누구나 꿈꾸는 이상향이 있을 것이다. 오늘 흘리는 땀은 모두 그곳에 가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의 밑바닥에는 허위가 없고 남을 배려하는 정신만 있을 것이다. 세상사람 모두 허위 없이 진실하고, 나 아닌 남을 배려하는 세상이 된다면 그곳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리라. 그런 세상도 따지고 보면 스스로가 만들어야 하는 것, 그래서 마음의 청산을 가꾸는 것이 현실적으로 청산에 드는 길이라 생각되긴 하는데, 그 길도 가깝지 만은 않을 것이니 어이 하리오.

문무학 (대구예총회장 · 시조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