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최상류계에 속하는 경북 북부지역에는 유서 깊은 강촌마을이 산재해 있다. 안동 하회마을이 그렇고 예천 회룡포도, 영주 문수면 수도리 전통마을도 따지고 보면 다 강촌마을이다. 의성 김씨 집성촌이 안동 임하 천전리인 것처럼 큰 문중의 집성촌도 대부분 강과 하천을 끼고 형성돼 있다. 이 때문에 이 지방 사람들은 산과 들처럼 맑고 깨끗한 강과 하천도 생활의 한 부분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민물고기로 만든 음식이 어느 곳보다 풍부하다. 특히 여름철 천렵은 마을 주민들의 대동 민속놀이에서 빠질 수 없는 행사. 강가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모래무지, 참마자, 꺽지, 꾸구리 등 각종 물고기를 물속에서 후려내 고추장을 풀고 얼큰하게 끓여 낸 매운탕은 여름철 강촌 사람들이 즐겨먹던 토속음식이다. 교통이 불편하던 그 옛날 바다가 멀어서 비싸기만 했던 생선을 대신해 강촌사람들의 이열치열 음식으로 여름철 보양식이 된 민물고기. 그 중 안동에서 만난 낙동강 모래무지 매운탕은 민물고기 토속음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일깨워 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인기 폭발 안동 모래무지 매운탕
"오늘 참 덥지요. 어서 들어 오이소." 모래무지 매운탕으로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은 안동시내 반변천변에 자리한 왕고집 매운탕집(용상동 1592-14). 자연산만 취급한다 하여 집 주인에게 붙여진 별명이 이제 간판이 됐다. 이집 주인 장경희(56)씨는 동갑내기 남편 김성동씨가 그날그날 잡아오는 물고기로만 매운탕을 끓인다. 그래서 이 집에는 냉동고가 없다.
"오래 됐거나 얼린 물고기와 갓 잡은 물고기의 맛이 천양지차라는 사실은 미식가들이면 다 알아요. 절대 속일 수가 없어요."
이 집의 가장 인기요리는 모래무지 매운탕이다. 적어도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겨우 맛볼 수 있는 모래무지 매운탕은 이렇게 끓여낸다. 통통하고 굵직한 모래무지 4, 5마리를 손질해 비늘을 친 뒤 잘 다듬어 놓고 고추장과 된장, 고춧가루를 함께 푼 물을 펄펄 끓이다가 손질한 모래무지를 넣고 한소큼 더 끓인다. 국물이 되직할 때쯤 풋마늘과 파,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김을 올린 후 손님상에 낸다.
냄비두껑을 열어보면 흔한 메기 매운탕과는 차원이 다른 구수한 냄새와 시원한 입맛이 코와 입을 자극한다. 투명하리만치 하얀 모래무지의 속살도 속살이지만 푹 익은 모래무지 머리를 숟가락으로 뚝 떠 입에 넣어 봐야만 그 구수한 맛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 쏘가리를 섞어 끓이면 국물이 더욱 담백해진다. 미식가들에게 대동강 모래무지회가 이룰 수 없는 꿈이라면 낙동강 모래무지 매운탕은 안동에서만큼은 가능한 현실이다. 잔가시가 없어 먹기도 편하다. "전어 머리에 깨가 서말이라고 했지요?. 거기에 비하면 낙동강 모래무지 머리엔 깨가 닷말이나 들어 있지요. 허허허."
모래무지가 없을 땐 참마자를 대신 쓴다. 청정 수역에서 사는 참마자는 초겨울 월동을 위해 떼지어 있을 때 잡기가 쉬우며 강물에 살얼음이 살짝 얼 때 잡은 것이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그 다음이 꺽지 도리뱅뱅이다. 담백한 꺽지 매운탕도 좋지만 꺽지를 바짝 튀겨서 꾸덕하게 말린 다음 프라이팬에다 갖은 양념으로 졸여낸 이 도리뱅뱅의 고소한 맛과 바삭한 식감은 가히 일품이다.
◆민물고기도 특화하면 산업화 가능
일반적으로 여름철 음식으로 한번쯤 먹을 만하다는 매운탕도 특화 여하에 따라 산업화가 가능해진다는 걸 엿볼 수 있다. 모래무지 매운탕이 미식가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일반적인 매운탕집에서는 그냥 잡어매운탕이라고 해 모래무지를 잡어로 취급하지만 이집에서는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는 대동강 모래무지회처럼 낙동강 상류 모래무지를 특화하면서 그 가치를 상업적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
강과 호수변 간이음식점에서나 접할 수 있는 민물고기 토속음식인 매운탕. 물고기 하면 보통 잉어와 붕어, 메기를 떠올리면서 매운탕을 생각한다. 잉어와 메기는 강 중하류지역에서도 많이 잡힐 정도로 흔하고 양식기술의 발달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대중화가 됐으나 중국에서 대량 수입되면서 그 가치가 자꾸 떨어지고 있는 게 흠이다.
그러나 강 상류로 가면 그렇지가 않다. 꺽지와 동사리는 물론이고 모래무지, 미유기, 참마자, 돌고기에다 쌀미꾸리, 퉁가리, 누치 등 갖가지 민물고기들이 더 흔하다. 피라미와 갈겨니는 여울, 소를 따질 것 없이 지천으로 있다.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일 만큼 깨끗하고 맑디맑은 물속에서 잡은 물고기에 누가 감히 값을 따질 수 있을까. 이제 낙동강 최상류계에서 잡히는 모래무지, 동사리 한 마리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고급 음식 개발에 눈을 돌려야 할 때. 무작정 보호에만 머무르지 말고 외국처럼 어자원 확대로 식재료 자원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 한식 세계화의 상차림에도 눈길을 끌 수 있는 스페셜한 소재로 '언제 어디서 잡은' 이름 있는 귀한 민물고기를 등장시킬 만하다고 요리 연구가들은 지적한다.
먼저 바다에만 머무르고 있는 수협을 민물로도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일본은 내륙수협을 설립, 오래 전부터 민물 어자원 관리와 관련산업 육성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는 없다. 국내 1만여명에 이르는 민물어부들이 체계적인 유통과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수협의 손길이 미쳐야 한다는 게 내수면 어로업자들의 오랜 숙원이다. 그래야만 4대강 상·중·하류 등 권역별로 진귀한 민물 어자원의 산업적 가치를 새롭게 발굴하고 한식소재로서 육성하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 일본은 골목수퍼에서도 진귀한 식용 민물고기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유통구조가 만들어져 있으며, 중국도 어느 도시의 식당에서든 민물고기 요리를 쉽게 접할 수 있을 만큼 전국적인 생산과 유통시장이 체계적으로 형성돼 있다.
"다들 민물어부들이 하는 일을 죽지 못해 하는 일로 보잖아요. 이제 민물에서도 어촌계를 만들고 남획방지와 수질보호 등 환경보호 활동에 자발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생계안정을 이뤄줘야 합니다." 안동지역 민물어민들의 오랜 하소연이 귀에 쟁쟁하다.
◆민물요리 한식 개발, 세계시장은 블루오션
중국사람들이 민물고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바다 생선이라고 하면 상어지느러미나 말려먹을 뿐이다. 중국의 물고기 요리는 대부분 손질한 물고기에 칼집을 깊게 넣고 밀가루로 옷을 입힌 다음 센 불로 튀겨낸 뒤 접시에 담아 적절한 향신료를 뿌리고 탕수육 형태의 소스를 끼얹는 방식이다. 강한 불로 조리하면서 비린내를 제거하는 등 다양한 요리법이 개발돼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민물고기 음식은 매운 고추장을 써 비린내를 감춘 서민형 매운탕이 유일하다.
회를 싫어하는 중국 사람들도 남방 북방 할 것 없이 민물새우 회를 즐겨 먹는다. 파닥거리는 생새우를 뚜껑있는 그릇에서 젓가락으로 집어내 간장소스에 맛있게 찍어먹는 중국 민물새우 회는 별미급 요리에 속한다. 반면 우리는 민물새우 하면 낚시미끼 이외에 요리 재료로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강과 호수, 크고 작은 저수지마다 다양한 종의 민물새우가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낙동강 상류수역에서 생산되는 민물고기는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울진 왕피천과 낙동강 지류 반변천의 공동 발원지인 영양은 청정 민물고기의 요람이다. 길안천과 반변천 지류인 용전천이 발원하는 청송도 마찬가지다. 내성천 발원지인 봉화도 은어축제와 민물고기 축제가 성공리에 열릴 정도로 경북 북부지역의 강촌마을은 가꿔내기 나름에 따라 민물어자원의 보고가 되기도 한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납줄개와 피라미, 갈겨니도 훌륭한 민물고기 요리재료가 된다. 일본 사람들은 안동지역 갈겨니와 피라미의 식품적인 가치를 높게 보고 벌써 수년째 수입해 가고 있으나 정작 우리는 물고기 취급도 하지 않는다. 매운탕에 피라미 한 마리가 들어간 게 눈에 띄기라도 하면 무슨 못먹을 게 들어간 양 주인에게 항의할 정도다. 앞서 소개한 중국 민물고기 요리의 예를 보더라도 민물새우나 다슬기도 요리방법을 개발하기에 따라 특화된 향토음식 소재로서의 가치를 한껏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잉어와 쏘가리 등 어마어마한 민물고기를 소비하는 중국대륙을 겨냥해 우리 한식의 중국화, 나아가 세계화를 궁리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lmnb12@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