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역사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일이 거의 없다. '역사'라는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자신들의 입장을 곤란하게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무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역사에 대해 무지하고 잘못된 역사 교육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호주에 유학을 했을 때이다. 계속 일본에만 있었다면 아마 평생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호주에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있었다. 문화와 가치관이 비슷한 일본인과 한국인은 빨리 친해졌다. 함께 수업을 하고 방과 후 테니스를 하는 친구도 한국인이 많았다. 어느 날 일본인 학생이 "일본이 과거 한국에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어?"라고 했다. "모르는데"라고 대답하자, 역사를 전공한 그녀는 한일 간에 얽힌 과거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한국 유학생들은 일본인에게 아무 말 하지 않지만, 모두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다"고 했다. 일본인이 한국인을 무참하게 학대했다는 이야기를 이때 처음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가깝게 지내는 한국인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일본인인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때는 생각도 못했지만, 나중에 한국에서 생활하게 된 나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직접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할머니가 유창한 일본어로 상냥하게 말을 걸면서 자기의 일본식 이름을 이야기했을 때, 내 가슴은 후벼 파듯 아팠다. 또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던 회사의 회식자리에서 술 취한 중년의 사원에게 "내 친척은 옛날 일본인에게 살해당했다. 나는 일본인을 미워한다"는 말을 들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당황했다. 그러나 역사에 무지한 내가 가볍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역사가 남긴 그 사람의 상처를 일시적으로 감싸고 덮어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최근 '역녀'(歷女)가 급증하고 있다.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NHK 대하 드라마에 빠지거나 역사적 유서가 있는 곳을 둘러보고 하는 젊은 여성을 가리킨다. 역녀가 늘어난 것은 일본의 전국(戰國) 시대를 무대로 한 게임과 전국 시대의 장수를 주인공으로 한 '천지인'(天地人)이라는 대하 드라마 열풍 때문이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든,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일본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일본 사회의 변화를 의미한다. 일본에서 한류가 시작되고, 사회적 분위기를 바꾼 것도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의 열정은 어떠한 변화를 기대하면서 누군가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본의 역사 열풍과 한류 열풍이 맞물려 언젠가는 모두가 한일 역사에도 눈을 돌리게 되기를 나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역사 이야기를 하는 순간 곧바로 친한 친구들이 적과 아군으로 갈려버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인은' '한국인은'이라고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느새 혼자서 각자의 국가와 역사를 짊어지고 있었다. 아픈 역사를 직접 경험한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전해들은 젊은이들도 똑같은 고통과 증오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반복되는 증오의 연쇄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한국을 떠날 때까지 나는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도 반복되고 있는 '증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일본과 일본인으로부터 가까운 사람이 피해를 입은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역사를 알고 정의감이 넘치는 그들은 그것을 극복해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를 바라고 싶다. 그리고 일본도 언제까지나 역사를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아픈 역사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한일관계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고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그리 길지 않지만,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짧은 기간 동안에 한일 간에 어떠한 새로운 역사가 채워질지 나는 궁금하다.
요코야마 유카·일본 도호쿠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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