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에서의 첫 경험이지만 행정부에서의 경험이 밑받침되죠. 정부와 여당의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완영(52) 한나라당 환경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 대구지방노동청장을 마치고 전문위원으로 영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국방대학원 안보 과정을 수료했다. 이 위원은 "당에 근무하면서 대구경북 경제 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고향으로의 기업 지원, 실업 해소를 위해 애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위원은 2007년 11월부터 약 2년간 대구지방노동청장을 역임했다. 그가 있는 동안 대구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단 한 건의 노사 분규가 없었다. 대구노동청사 앞에 '노사화합의 탑'을 기념으로 건립했다. 그는 "영남대병원의 파업이나 델파이 문제로 시끄러웠지만 전 직원이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조정하면서 잘 마무리됐다"며 "이제 대구가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이 위원은 3대가 공무원이다. 조부인 고(故) 이성기옹은 성주군 수륜면장을 지냈고, 부친인 고(故) 이종만씨는 성주군청과 대구시청에서 근무했다. 퇴직 후에는 귀향해 수륜중학교를 설립했고 수륜농협 설립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위원은 그래서 어깨가 무겁단다.
"성주에서는 우리 집안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다 알죠. 공직 생활에 대한 굉장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에 대한 기대도 높고 압박감까지 들지만 어르신들의 가르침을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는 없거든요." 그는 10년 전 서울에서 '성공회'(성주 출신 공무원 모임)를 만들었다. 대구 발전을 위해 '달구벌 희망포럼'도 창립해 수석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고향애가 뜨겁다. 정치색을 떠나 중앙의 관·학·재계 출향 인사들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이 위원은 "얼마 전 포럼에서 동남권신공항 유치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있었다"며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별명은 '노정통'이다. 1982년 제26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산림청에서 잠시 근무한 뒤 1987년 노동부로 옮겼다. 임금복지과장, 노사조정과장, 여성정책과장 등 험난하기로 유명한 곳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지금까지도 그의 주제는 노동이다. 노동부 공무원은 노사로부터 함께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게 신조란다.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도시행정 부문 석사, 항공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남대, 대구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2008년 매일신문에 시론을 쓰면서 직업의 소중함과 자녀 교육, 올바른 노사관계 등을 역설했고 읽기 쉽고 풍부한 내용으로 독자들의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 위원은 "지금도 진학이나 취업, 진로에 관한 강의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며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 기타를 치고 싶어하는 자녀에게 공부만 강요하면 안 된다. 직업은 이미 수만 가지라고 얘기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고향에 대한 사랑도 크다. 공직에서 물러나면 고향으로 내려와 젊은 학도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단다. 그는 "지금은 평생교육 시대"라며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가르치려면 학생보다 몇 백배 더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고향분들이 대구 걱정을 많이 합니다. 광주에는 기아차도 있고 삼성전자도 있는데 고향에는 재벌그룹의 공장이 하나도 없다고 걱정합니다. 결국 지역 경제는 기업을 얼마나 유치하고 국책 사업을 얼마나 가져오는가의 문제입니다."
어린 시절 문학도를 꿈꿔온 이 위원은 부친의 한마디로 공직에 몸담았다. 두 딸과 아들이 있는데 아들에게도 공직을 권하고 있다. 봉사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위원은 성주 수륜초·중교, 대구 경상중, 대륜고를 거쳐 영남대 행정학과를 나왔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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