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희씨는 동화 달력작가다.(책상달력) 달력에 쓸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제작에서 판매까지 혼자 처리한다. 11년째다. 그녀는 "꿈이 있는 한 가난하지 않다. 재능은 나누는 것이다"는 신념으로 뭉친 세대인데, 앞만 보고 달려온 '부모님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세대에 해당한다.
그녀가 처음 책상달력형 동화달력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홍보를 위해 동화달력을 만들어 무료 배포했지만 알려지지 않았고 빚만 늘어갔다. 판매를 위해 대형 문구매장을 두드렸는데, 무명작가의 달력을 진열해줄 매장은 없었다. 그래서 교보문고에 공짜로 수백 권의 달력을 사은품으로 써달라며 제공했다. '페인팅 레이디 동화달력을 사은품으로 드립니다'는 글씨가 매장에 붙었고, 그 매장에서 물건을 산 고객들은 김계희씨의 동화달력을 사은품으로 받아 갔다. 그렇게 3년 동안 무상으로 달력을 제공한 뒤에 교보문고에 자신의 달력을 진열할 수 있었다. 이어서 영풍문고와 인터넷 서점 예스24에도 제품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진출한 대형 매장에서 2003년 한 해 동안 팔린 달력은 모두 4권이었다.
유명 매장 3곳에서 겨우 4권을 판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망할 만한 수치일 것이다. 그러나 김계희씨는 '누가 내가 만든 달력을 사갔을까. 그 사람들에게는 내 달력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을까?' 궁금했고, 기뻤고, 가슴 벅찼다고 했다.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2년 뒤인 2005년 김계희씨가 만든 '어머니의 나무'라는 달력이 블로그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면서 그해 생산된 70여 종의 책상 달력 중 판매율 1, 2위를 다퉜다. 그녀의 동화달력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계명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녀에게 그림은 '꿈'인 동시에 '짐'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림을 그리겠다'는 꿈을 갖고 살아왔고, 한편으로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녀는 그러나 언제나 '꿈'을 좇았기에 경제적 어려움도, 알아주는 사람 없는 작업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꿈은 마술 같은 거예요. 꿈이 있는 한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어요. 꿈을 잃어버리는 순간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도 모두 사라져요."
김계희씨의 그림은 맑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글 역시 치장하거나 과장함이 없다. 오직 체험만을 기록한 짧은 글들은 유명작가의 세련된 글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겨울이 오기도 전에 그를 위해 입을 크리스마스 정장을 사러 다니지만, 가을에 시작한 연애는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면 언제나 끝이 난다.'
'햇볕 따뜻한 날 어머니는 흰 홑청을 빨랫줄에 널어 말렸다. 홑청 안으로 들어가 빳빳하게 마른 홑청을 쫙쫙 펼치며 나아가면 그 끝에는 아, 아름다운 어머니가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김계희씨는 달력의 그림과 글들이 따뜻하고 맑다. 그 이유를 그녀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듯 저의 감성도 어린 시절에 완성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유년의 빛깔과 감촉을 잊지 않아요. 이마에 주름이 깊어도 유년의 기억을 간직하는 한 삶은 행복하고 아름다워요. 비록 세파에 시달리느라 빛이 많이 바래는 경우가 있기는 하겠지만, 없어지지는 않아요."
김계희씨는 처음부터 동화달력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운동가'로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어디에도 발을 고정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모양으로 서성거렸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전공했지만, 그림과 화해하지 못했다. 열기로 했던 개인전을 취소하기도 했고, 자신의 실수로 불이 나 건물을 모두 태우기도 했다. 그 무렵 오빠가 '페인팅 레이디'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며 동화를 그려볼 것을 권했다고 했다. 막연하게 시작했는데, 5편의 그림 동화를 완성하고 나서 처음으로 '미술과 화해'하는 계기를 찾았다고 했다.
김계희씨는 자신의 동화달력을 판매하기 위해 여러 기업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기준은 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달력이 어울릴 만한 기업이어야 한다. 병원, 학교, 사회적 기업, 보험회사 등이 그런 기업이다. 그녀의 경험으로 볼 때 20곳을 방문해서 열심히 설명하면 1곳 정도 주문을 받는데 성공한다. 그녀는 거절당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스무 번째의 성사를 위해 열아홉 번의 거절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거절당하지 않는 삶은 없으며,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고 확신했다. 실패한 적이 없는 사람은 아마 시도해본 일이 없는 사람일 것이라고도 했다.
힘든 작업을 해왔지만 기운 나는 일도 많았다. 한번은 그녀의 동화달력을 이용해본 사람들은 이듬해에도 제작을 의뢰해왔다. 제작을 의뢰해주어서 기쁘다기보다, 고객과 공감했다는 생각에 기쁘고 행복했다.
김계희씨는 달력을 팔아 번 수익금을 가난한 나라에 우물 펌프를 보내거나, 학비를 지원, 생계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쓴다. 매년 초에 성금액수를 정해놓고, 판매와 상관없이 그것을 지키려고 갖은 애를 쓴다. 그래서 때때로 달력을 팔고도 적자에 허덕이기도 했다. 수익이 조금 발생했다고 선뜻 '이웃'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녀는 다르게 생각했다.
"제 동화달력이 누군가의 마음에 든다면, 제게 재능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그 재능은 제가 만든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주어진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가난한 나라에 태어난 사람의 불행은 자신이 만든 불행이 아닙니다. 그냥 그에게 주어진 환경이지요. 가난한 부모를 만났거나, 장애를 갖고 태어났거나, 가난한 나라에 태어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지요.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저의 작은 재능 역시 그냥 받은 것일 뿐이고요. 그러니 나누어야지요."
김계희씨의 동화달력은 9월 말쯤이면 페인팅레이디 홈페이지(www.paintinglady.com)와 서점에 출시된다. 회사 홍보용 달력은 벌써부터 주문을 받고 있다. 사람들에게 책상 달력은 일종의 '일기'이기도 하다. 어른이 일부러 일기를 쓰기는 어렵다. 그러나 특정한 날의 행사, 만남, 약속 따위를 달력에 기록하다보면 그 자체로 일기가 된다. 김계희씨가 만든 따뜻한 달력에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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