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아공 통신] 열광하는 흑인, 무관심한 백인…

남아공의 두얼굴

'흑인만의 월드컵인가.'

11일부터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남아공의 경기장에선 현지 백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거리에서 남아공 국기를 들고다니거나 차량에 국기를 달고 다니며 부부젤라를 부는 사람도 대부분 흑인이다. 흑인들은 남아공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하고 흥분한 모습이지만 백인들은 무덤덤하고 오히려 부정적이다.

이는 우선 흑인, 백인 간의 인기 및 선호 스포츠가 달라서이다. 축구의 경우 현지 흑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반면 이곳 백인들은 대부분 럭비를 좋아하고 크리켓이나 골프, 서바이벌 게임 등을 즐기기 때문이다. 실제 월드컵 기간인데도 이곳 TV에선 백인이 좋아하는 럭비와 크리켓 중계나 뉴스 비중이 크다. 럭비와 크리켓 경기 장면이나 소식이 빠지지 않는다.

럭비 월드컵이 열린 1995년이나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했던 2007년엔 백인들이 얼굴에 페인팅을 하고 길거리에서 응원하는 등 온통 축제 분위기였지만 이번 축구 월드컵엔 그런 백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흑인·백인 간의 인기 스포츠의 차이는 흑인과 차별성을 두고 싶어하는 백인의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남아공의 백인은 영국 등의 영향으로 럭비 등을 좋아하게 됐지만 축구는 흑인이 좋아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됐다고 한다. 백인의 자존심과 차별성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네덜란드어를 토대로 독자적인 '아프리칸스어'를 만들어 사용할 정도라고 한다.

단지 이번 월드컵에 관심을 안 보일 뿐 아니라 '재앙'으로 볼 정도로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백인도 있다고 한다. 대회가 끝난 뒤 남아공이 오히려 퇴보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는 것. 월드컵 개최를 위해 빚을 냈는데 치안 문제로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아 판매나 관광 수익이 기대를 훨씬 밑돌면서 경제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경제적 손실로 월드컵 후 빚더미에 앉으면 빈부 격차가 더 심해지고 이에 따라 범죄율도 더 높아져 백인들이 남아공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또 월드컵 후 남아공이 '안전하지 못한 나라'라는 것이 더욱 알려지고 결국 불안한 나라로 각인돼 남아공 이미지가 더 나빠지지 않을까도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남아공 더반에서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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