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순간, 法이 과학기술자를 죽이고 있다

▨도난당한 열정/윤건일 지음/시대의 창 펴냄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산업기술 해외유출은 166건. 이로 인한 국내 업체 피해액은 267조4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식경제부가 이강래 민주당 의원과 배은희, 임동규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산업기술 유출 건수와 피해액은 2003년 6건, 14조원에서 2008년 42건, 79조8천억원으로 늘어났다.' -39쪽 정리-

이 책은 한 국립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와 그의 대학원 제자들이 '기술유출 혐의'로 기소돼 1심과 2심을 거쳐 무죄로 확정되기까지 3년 동안의 고통과 억울한 사연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국립대 교수의 기술유출 사건은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해당 교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다른 제자들은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 또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 이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은이는 "자원이 없는 나라의 핵심 경쟁력은 기술이다. 기술이 유출된다는 것은 국가 경쟁력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기술유출 범죄는 약탈에 해당한다. 그러나 기술유출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기술유출로 고통 받는 사람은 누구인지,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따져야 보호 대책이든 예방 대책이든 논할 수 있다. 정확한 실태를 모르는 상태에서 만든 정책이나 제도는 억울한 피해를 낳고, 이는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온다"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막대한 개발비를 들여 만든 기술이라고 해서 반드시 가치 있는 기술은 아니며 대체 기술의 존재 여부, 상품화 여부에 따라 기술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기술유출사건'의 경우 다양한 변수를 반영하지 않고, 막연히 '그 기술이 활용됐을 때를 전제하고 예상한 피해액을 산정했기 때문'에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기술유출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술유출의 정의, 기술의 정의, 기술유출로 발생하는 피해액의 산출방식, 대체 기술 등을 종합적이고 세밀하게 고려한 후에 처방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상식적인 수준의 주장인데 지은이는 현행법이 상식 수준으로도 정비돼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지은이는 기술유출에 대해 그렇게 병적으로 과민반응하고 기술의 가치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작 우리 사회가 그 기술을 취급하는 과학기술자를 얼마나 소중하게 대해 왔느냐고 묻는다.

또 기술유출 수사로 인한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수사당국의 전문성 제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이 유출됐다고 했을 때, 막연히 '기술유출'이라는 두려운 말에 휘둘릴 게 아니라, 그 기술이 얼마나 가치 있느냐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정의나 전문 지식이 없는 한 고소인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적절한 검증절차를 밟지 못한 채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기술 분야만 다루는 '전문법원'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언한다.

이 책은 마감시간과 전문성 부족 등 여러 이유로 '보도자료'에 의존해 기사를 쓰는 언론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어느 사회나 거짓말을 퍼뜨리는 부류는 많고, 언론인들 중에는 자신이 듣고 싶은 거짓말만 듣는 관성을 가진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언론인의 사명'으로 해석하고 우쭐해 한다. 228쪽, 1만2천8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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