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민도 대통령의 실패를 원치 않는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실패는 대통령 개인의 실패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에는 그(녀)의 개인적인 자질이나 선택, 혹은 정치적 운이나 환경 같은 요인들이 적잖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패한 대통령으로 인한 국가적 손해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위대한 대통령을 갖고 싶은 것은 국민들의 공통된 열망이지만 그 열망이 실현되는 데는 일정한 행운이 따라줘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실패하지 않은 대통령을 갖는 것 정도가 현실적인 희망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대통령의 최선의 판단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잘못된 판단을 막을 수 있는 전문적인 정책보좌 시스템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대통령의 실패를 막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의 마련, 혹은 '대통령직의 제도화, 시스템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200년 넘게 대통령제를 실행해 오고 있는 미국에서 역시 이러한 제도화가 쉬운 일은 아니어서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이러한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었다.
미국 의회는 1857년, 제임스 부캐넌 제15대 대통령 때에 이르러서야 1명의 유급 대통령 비서를 위한 예산을 배정했다. 그 이전의 대통령들은 자신의 동생, 아들, 사위, 조카, 처남 등을 사적으로 고용했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을 치렀던 우드로 윌슨(제19대 대통령'재임기간 1913~21) 대통령은 비서와 요리사를 포함한 7명의 스태프로 전쟁을 치렀고, 허버트 후버(제31대 대통령'재임기간 1929~33) 대통령은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격변 속에서 37명의 백악관 스태프를 가졌을 뿐이었다. 이조차도 물론 정책보좌를 위한 스태프들은 아니었다. 1930년대 대공황을 맞은 미국의 경제 회생을 위한 연방정부 차원의 다양한 뉴딜(New Deal) 프로그램들이 기획, 실행되는 기간 동안에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백악관 스태프 조직은 크게 확장되지 않았다. 필요한 인력들은 행정부에서 백악관으로 파견되어 근무하였고 그들의 월급은 원 소속 부서에서 지급되는 형식이었다.
이처럼 열악했던 백악관 참모 조직이 획기적으로 확대, 강화된 것은 1939년 '대통령집무실'(Executive Office of the President)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EOP는 이후 확대를 거듭해 현재 2천명 이상의 전문 인력이 대통령의 정책 판단과 집행을 보좌한다. 미국 대통령이 누리고 있는 정책보좌 인력과 예산에 대한 의회 차원의 저항이나 반대의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여야를 떠나 대통령의 성공을 위한 인적, 물적 지원에 인색하지 않다는 의미이고 그만큼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이 방대한 규모의 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역할이 대통령에게 부과되었다는 점이다. 대통령 조직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대통령 자신을 향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과 의제를 공유하고 그에 완전히 헌신하는 조직을 운영하는 일은 지난한 과제다. 이들이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할 것이라는 완전한 보장이 없기 때문이고 이들 사이의 정치적, 정책적 갈등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목표는 끊임없이 공유되어야 하고, 내부의 갈등 요소는 완전하게 관리'통제되어야 한다.
크로닌 교수와 지노비스 교수의 『미국 대통령의 패러독스』는 미국 대통령이 처한 역설적 상황을 잘 묘사한다. 대중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대담한 국가적 의제에 도전하는 대통령을 원하면서도, 권력의 일방적 독주나 정책 추진에 따르는 비용 부담을 경계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대통령의 역설을 극복하는 시작은 자신의 (백악관) 참모 조직과 정당에 대한 완전한 관리'통제 혹은 그로부터의 완전한 지원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물론 그 이후에도 의회와 야당, 다양한 이익집단,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 일반을 설득하고 동의를 획득하는 험난한 과제가 남아있음은 물론이다.
위대한 대통령은 고사하고 실패하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처한 역설을 넘어서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그러나 필부(匹夫)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와 내 주변을 완전히 장악할 것!
계명대학교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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