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반은 한국에 축복의 땅이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유명한 복싱 스타 홍수환씨가 1974년 7월 4일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꺾고 세계 챔피언이 된 곳이 더반이다. 온화한 기후의 항구 도시인 더반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출전 사상 56년 만에 첫 원정 16강 진출의 숙원을 풀었다.
22일 밤(현지시간) 남아공 더반 스타디움. 전·후반 90분을 마치고 추가 시간 3분이 주어지자 한국 응원단은 더욱 힘차게 "대~한민국"을 외쳤다. 길게만 느껴졌던 숨막히는 3분이 지나가면서 승부는 2대2 무승부로 끝났다. 한국이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나이지리아 선수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그라운드에 주저앉았고, 한국 대표팀은 어깨동무를 하고 날듯이 기뻐하며 감격의 순간을 함께했다. 한국 응원단은 경기가 끝난 후 경기장이 텅 빌 때까지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한참 동안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이날 밤 조별리그 B조 최종전이 열린 남아공 더반의 더반 스타디움은 환한 불빛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더반 스타디움은 모세스 마비다 스타디움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백인 정권 시절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무장 투쟁을 이끈 모세스 마비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스타디움에 들어서다 기자는 졸지에 테러범이 될 뻔했다. 미디어 출입구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 경찰이 노트북 등이 든 가방을 열어보라고 했다. 으레 하는 검색이려니 하며 가방을 여는데 갑자기 "이 가방에 폭탄이 들어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며 "폭탄은 어디 있느냐?"고 했다. 정색을 하고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그제야 웃으며 "가방에 폭탄 없느냐?"며 가방을 건넸다.
스타디움은 6만7천여명의 관중으로 꽉 찼다. 한국 응원단은 400여명뿐이고 나머지는 나이지리아인들이다. 이날 따라 부부젤라가 더 극성이었다. 귀가 멍하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 무아지경 상태였다.
우려했던 대로 나이지리아가 공을 잡으면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렸다. 나이지리아 관중들은 파도타기 응원까지 선보이며 자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남아공에 와서 처음 보는 파도타기 응원이었다. 그러나 한국 응원단도 물러서지 않았다. 극히 적은 수지만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북소리와 '대~한민국' 함성으로 한국 선수들에게 힘을 보탰다.
전반 12분 어설픈 수비로 나이지리아에 선제골을 허용했다. 나이지리아 관중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고, 경기장은 부부젤라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의 동점골에 이어 역전골까지 터지자 한국 응원단의 응원 소리가 부부젤라를 뚫고 터져나왔다. "대~한민국" 함성이 떠나가라 울려 퍼져 경기장엔 한국 응원단만 존재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과연 400여명의 응원단이 쏟아내는 소리인가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6만7천석 규모의 스타디움에서 한국 응원단은 하나의 '점'처럼 느껴졌지만 응원전에선 전체 스타디움을 압도했다.
바다를 끼고 아름답게 자리를 잡은 더반 스타디움은 한국 축구대표팀에게, 한국 응원단에게, 한국 국민들에게 좋은 인연을 가진 도시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남아공 더반에서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