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SK와 노태우, 그리고 대구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1973년부터 25년간 기업을 이끌며 실질적으로 현재의 SK그룹을 일궈낸 고(故) 최종현 회장의 뒤를 이어 1998년 그룹총수에 올랐다. 당시 최 회장은 30대 후반에 불과했다.

경영경험이 얕았던 최 회장이 30대 후반의 나이에 거대기업의 총수에 오르자 재계에서는 과연 그가 SK를 잘 이끌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최 회장의 리더십하에 SK그룹은 현재 재계순위 3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 회장은 그룹총수답지 않은 서민적인 풍모를 보이며 '정과 의리'의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리더십은 이른바 '섬기는(Servant) 리더십'으로 불린다. 그룹 내 임원들과 노량진수산시장에 가 자신이 직접 고른 횟감으로 소주를 즐기고, 그룹 내 행사가 있을 때는 직원들을 위한 '카메라맨'도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12년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에게도 고민과 과제가 있다. 현재 주력기업인 SK텔레콤과 SK에너지의 국내 산업은 사실상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SK그룹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신성장동력 창출과 이를 빨리 수익구조로 연결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 회장은 현재 중국 등지에서 또 하나의 SK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구상을 하고 있고 국외 자원 개발과 바이오산업 육성을 통한 그룹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SK그룹이 어느 대기업보다 신성장동력 창출과 신수종 사업에 적극적인 데서 대구는 SK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구시는 그동안 삼성그룹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 터에 창업자 이병철 전 회장의 '호암 동상'을 세우고 인근 도로를 '삼성로'(三星路)로 명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삼성그룹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삼성의 이런 태도에는 이유가 있다. 삼성이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LED, 연료전지, 바이오 등의 신수종 사업들은 충남 탕정, 경기 시흥 등을 비롯한 기존 공장에 유사 또는 연관산업 인프라가 갖춰진 곳이 많다. 이 때문에 삼성이 이곳을 벗어나 다른 곳에 신사업 터를 잡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경제계는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구시의 삼성에 대한 구애가 '짝사랑'에 그칠 공산이 크다.

반면 SK가 투자하려는 신사업들은 그룹의 기존 업종을 벗어난 것으로 새 둥지를 찾아야만 한다. 대구는 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SK그룹의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SK와의 인연과 창구를 만드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 최 회장의 장인은 대구가 고향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현재 노 전 대통령은 병세가 위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최 회장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병문안을 갈 정도로 장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경남 거제시는 50억 원을 들여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록전시관을 개관했다. 전'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공과가 모두 있을 수 있겠지만 대통령은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또 한 시대를 주도한 사람으로서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역사의 한 모습이 된다.

대구 동구 팔공산 자락에는 노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다. 매일 20여 명이 찾고 있지만 주차장도 없고, 노 전 대통령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실상 방치돼 있다시피 하고 있다.

노씨 일가와 SK그룹에서도 노 전 대통령 생가에 대한 관리'복원 구상이 있겠지만 이와는 별도로 대구시가 먼저 노 전 대통령의 생가에 대한 복원사업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SK그룹을 잘 아는 지역의 한 기업인은 "SK는 독특한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간다"는 말을 했다. 필자도 실제 SK그룹 임원을 만났을 때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노 전 대통령을 매개로 SK그룹과 대구시가 동반자 시대로 가는 물꼬를 틀어보자.

이춘수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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