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벌써 여섯번의 수술' 신경섬유종증 앓는 곽병혁 군

신경섬유종증으로 왼쪽 안구가 함몰된 병혁(16)이는 6번의 수술을 했고 다음달 7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다. 여러 차례 반복된 뇌수술로 늘 머리가 아프지만 병혁이는
신경섬유종증으로 왼쪽 안구가 함몰된 병혁(16)이는 6번의 수술을 했고 다음달 7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다. 여러 차례 반복된 뇌수술로 늘 머리가 아프지만 병혁이는 "학교에 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다"는 사춘기 소년이다. 성일권기자 igsung@msnet.co.kr

병혁이는 말이 없는 아이였다. 묻는 말에 '네' '아니오' 또는 '모르겠는데요'라는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그렇다고 무뚝뚝한 소년은 아니다. 취재가 이어지는 동안 연방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만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서툴 뿐이었다. 아마 이런 태도는 장애를 갖고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났을 것이다. 움푹 꺼진 채 굳게 닫혀진 왼쪽 눈. 사람들이 이런 병혁이의 얼굴을 이상하게 쳐다볼 때마다 그의 마음은 조금씩 움츠러들었고 말 대신 미소로 대답하는 쉬운 방법을 택했다.

◆여섯번의 수술, 여섯번의 상처

병혁이(16)는 두툼한 쌍꺼풀과 검고 큰 눈동자를 가진 '훈남급' 소년이다. 하지만 반듯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할 반대편 눈은 형체도 없이 푹 꺼져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신경섬유종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섬유종증은 뇌의 발생 초기에 신경능선이 분화 및 이주하는 과정에서 이상이 발생하는 질환인데, 병혁이는 눈에만 종양이 자꾸 생겨나고 있다.

병혁이는 네살이 되던 해에 처음 수술대에 누웠다. 그게 기나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자꾸만 깊숙이 파고드는 안구 때문에 매번 방학을 고스란히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동안 벌써 6번의 수술을 했다. 크면서 두개골도 자라다 보니 그때마다 안구뼈를 다시 이식해 형체를 잡아주고, 종양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수술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병혁이 엄마 아빠의 부담은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엄마 조경자(40)씨는 "간신히 마련했던 전셋집이며, 적금 등을 다 털어 수술비를 마련하는 것도 모자라 부모님 시골땅까지 담보로 맡기고 병원비를 빌려야 했다"고 했다. 여러 복지기관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한번에 수천만원에 달하는 수술비 때문에 병혁이네는 늘 빚으로 허덕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병혁이 아버지는 얼마 전 직장을 잃었다. 일하던 공장이 부도나면서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한 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일용직 노동판을 전전하던 병혁이 아버지는 얼마전부터 집을 떠나 달성군 현풍면에서 돼지우리 청소하는 일을 시작했다. 조씨는 "병원비를 마련하려면 잠시도 쉴 여유가 없다"고 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엄마 조씨도 장애인 근로사업장에서 휴대폰 조립작업을 하며 병원비를 마련하고 있다.

◆수술보다 두려운 건 친구를 잃는 일

병혁이는 별다른 취미가 없다. 머리가 아파 축구나 농구를 하며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고,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다 보니 눈이 쉽게 피로해져 책이나 컴퓨터에 빠져들어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것이다.

한창 게임을 즐길 나이지만 병혁이는 "30분만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어도 눈에 무리가 온다"며 "멍하니 앉아있거나 TV를 쳐다보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가 한쪽 눈으로만 바라보는 세상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집 앞에 있는 슈퍼마켓에 다녀오는 일에도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철없는 동네 꼬마들이 놀려대고, 지나가는 어른들도 병혁이가 신기한듯 한번씩 쳐다보는 탓이다. 장애로 인해 오히려 의젓해진 병혁이는 "이제 남들의 시선 앞에서 초연해지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이런 그에게 가장 든든한 언덕이 돼 주는 것은 동생 채훈(14)이다. 형보다 키가 두뼘이나 더 큰 채훈이는 병혁이가 비비고 기댈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구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은 "채훈이가 형이냐"고 묻고 놀리지만 병혁이는 또 씩 웃을 뿐이다.

아무리 동생이 좋다지만 아직 사춘기 아이에게는 친구가 필요한 법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늘 혼자서 지내왔던 병혁이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어릴 땐 외모를 보고 피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조금씩 철이 들면서 병혁이의 깊은 속마음을 보고 기꺼이 벗이 됐다.

수술을 하게 되면 적어도 3주 이상 입원해야 하지만 병혁이는 피곤도 잊은 채 퇴원을 하면 곧장 학교로 달려간다. 어렵게 사귄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질까 두려워서다. 수술보다 더 두려운 건 친구를 잃는 일이니 말이다.

◆ 평범해지고 싶은 병혁이

3주 전, 병혁이는 갑자기 두통이 심하다며 끙끙 앓다 한밤중에 응급실로 실려가야 했다. 며칠간의 검사 끝에 병원에서는 "또다시 수술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고 했다. 이제 7번째 수술이다. 올 여름방학에도 어김없이 병원신세를 져야 하는 병혁이는 이쯤 되면 병원가는 일이 익숙할 법도 하지만 "아직도 수술대에 누울 때마다 겁이 난다"고 했다.

병혁이 부모님은 또 수술비를 마련할 걱정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네 식구가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살림에 수술 전 검사를 받으러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것도 병혁이 가족에겐 큰 부담이다. 조씨는 "머리가 아프다 보니 버스를 타면 계속 멀미를 하고 구역질을 하지만 KTX는 비용이 비싸 탈 수가 없다"고 했다.

앞으로 병혁이는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의 수술을 더 반복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한번의 수술을 견뎌내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

"이번 수술을 받고 나면 조금 더 보기에 나아지지 않을까요?" 최근 들어 유난히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 병혁이는 또 그렇게 '희망'을 품고 두려움을 떨쳐내려 발버둥치고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황수영 인턴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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