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하나님 놀다 가세요 / 신현정

하나님 거기서 화내며 잔뜩 부어 있지 마세요

오늘따라 뭉게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들판은 파랑물이 들고

염소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데

정 그렇다면 하나님 이쪽으로 내려오세요

풀 뜯고 노는 염소들과 섞이세요

염소들의 살랑살랑 나부끼는 거룩한 수염이랑

살랑살랑 나부끼는 뿔이랑

옷 하얗게 입고

어쩌면 하나님 당신하고 하도 닮아서

누가 염소인지 하나님인지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거예요

놀다가세요 뿔도 서로 부딪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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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어느 시인이 감히 하느님을 꼬드기고 있네요. 근엄한 표정, 무거운 책임감 다 버리고 여기, '이곳'으로 내려오셔서 풀 뜯는 염소들과 어울려 편히 놀다 가시라고 하네요. "뭉게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건, 아마도 염소 영감이 하느님께 같이 놀자고 올려 보낸 풍선기별 같은 거라고 꼬드긴 시인도 하느님 닮아 참 천진무구하지요? 그렇기로서니 하느님, 이곳에서 하느님 닮은 염소들과 섞여 어울리는 대신 천진한 시인을 친구 삼아 노시려고 그새 '거기'로 데려가신 거예요? 그냥 내려오셔서 염소랑 "놀다가세요"라고만 했는데도 말이에요? 하느님, 더 이상 부끄러워만 마시고 이 들판으로 같이 내려 오셔서 염소들과 어울려 "뿔도 서로 부딪치"며 실컷 놀다가세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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