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대구 중구 신천 대봉교 둔치. 대봉교 아래 풍경은 마치 60여 년 전으로 시계를 돌린 듯했다.
6·25전쟁 당시 피란민촌이 형성됐던 신천 둔치에 쓰러질 듯한 판잣집과 움막, 천막으로 만든 '피란학교' 가 들어서 피란민촌이 재현된 것이다. 가로 30m, 세로 20m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당시 생활상을 엿보는 데는 손색이 없었다.
대구시·경상북도, 육군 제2작전사령부, 대구보훈청, 매일신문사가 올해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25일부터 27일까지 열고 있는 신천변 피란민촌 재현 행사에 시민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시민들은 피란민촌 체험을 통해 그 시절 민초들의 삶과 풍경을 되새겼다.
피란민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곳은 짙은 녹색 군용 천막으로 지은 '피란학교'. 기다란 판자로 만든 책상 6개가 두 줄로 늘어서 있고 삐걱대는 나무의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책상 앞쪽에는 자그마한 풍금과 시커먼 칠판이 배치돼 이곳이 교실임을 짐작하게 했다. 칠판 앞에는 손으로 쓴 동요(복남이네 어린 동생) 악보, 그 옆에는 '교훈-배워야 산다'는 글귀가 적힌 널판지가 걸려 있었다.
마침 초등학생 20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 어린이들은 현장 안내 요원의 설명을 듣고 노래를 따라불러 봤지만 낯선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배준우(10) 군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을 텐데 어떻게 여기서 공부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맞은편 피란 음식 시식코너에서 주먹밥을 맛본 아이들은 저마다 "이게 무슨 맛이야" 하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달콤하거나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텁텁한 주먹밥이 입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천막학교 양쪽에는 판잣집 세 채가 재현됐다. 시커먼 판자들이 지붕과 벽을 이뤘고 입구는 짚을 이어 만든 거적으로 가렸다. 창문 틈으로 보이는 세간이라고 해봐야 녹이 슨 솥, 수저와 밥그릇, 낡고 금이 간 항아리 정도가 전부였다. 판잣집은 비바람을 피하기도 쉽지 않아 보였고 어른 둘이 누우면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의 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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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촌을 둘러본 김성덕(69·수성구 수성동)씨는 시커먼 개떡과 주먹밥 등 피란 음식을 맛보며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는 "신천에 널려 있던 피란민촌 기억과 그곳에 살던 친구들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소원을 담은 판잣집을 지어보세요' 코너에 자리한 판잣집 세 채 주위에는 아이들이 수시로 몰려들었다. '빨리 통일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적어놓은 소원은 너무나 흔하게 들어온 것이지만 이곳 분위기에 가장 어울리는 듯했다.
한전기 현장 총감독은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피란민촌을 재현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라며 "힘들었던 시절을 돌아보면서 전쟁의 아픔을 잊지 말고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동영상 시민기자 윤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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