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만 있어달라 기도했는데…검문만 제대로 했더라면"

피살 여대생 유가족 울분의 심정

"살아만 있어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엄마를 남겨 놓고 니가 먼저 가면 어떡하냐…."

25일 오전 9시 40분쯤 대구 성서경찰서로 차량 한대가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여성은 울부짖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린 다른 이들도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L(26·여)씨 납치·살해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언론 브리핑이 있던 이날 "우리도 좀 듣고 알아야겠다"며 경찰서를 찾은 유족들이었다. 엄마, 이모, 외삼촌 등 유족들은 경찰서 앞마당에서 기자들을 먼저 만났다.

유족들은 경찰의 잘못으로 L씨가 숨졌다고 주장했다. L씨의 외삼촌은 "범인을 눈 앞에 두고 놓친다는 게 말이 되냐"며 "놓친 곳 주변을 차단하고 검문만 제대로 했어도 우리 조카는 살았을 것"이라며 줄담배를 피웠다.

경찰이 납치 이후 몸값을 요구하는 K씨의 말을 듣고 유족들은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고 했다. L씨가 갖고 있던 카드는 체크카드로 1회에 최대 100만원밖에 인출할 수 없는 현금카드였기에 유족은 현금을 부쳐서라도 시간을 더 늘리려 했다는 것이다.

L씨의 지인들도 가슴이 미어터졌다. 검은색 양복을 입고 유족과 함께 경찰서를 찾은 L씨의 남자친구는 "납치됐다고 알려진 그날 밤에도 통화를 했었는데 그때가 마지막 통화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좋아한, 착한 친구였다"며 "범인을 만나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묻고 싶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친구들은 L씨를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하는 친구로 기억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전문대에 진학했지만 예능을 전공하고 싶어 다시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다니던 대학을 마치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 갔을 때 해맑게 웃던 그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며 눈물지었다.

L씨의 친구들은 "고교때 잠깐 만난 적이 있다기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블로그를 찾아봤더니 가정까지 있었고 아기도 갓 태어났더라"며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해본 적 없는 친구에게 어찌 이럴 수 있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노경석 인턴기자 nks@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