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한국의 도우미)에서 이참(참된 한국인)으로'.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첫 공기업 사장에 오른 독일 귀화인 이참(56). 귀화인이라고 하면 언짢아한다. 32년 전 한국에 와서 한국인으로 살아온 지 24년이나 된 참 한국인이 맞다. 키 196cm, 몸무게 0.1t이 넘는 푸른 눈의 한국관광공사 사장이다. 취임한 지 벌써 10개월이나 됐다. 조직을 잘 이끌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 노력하고 있다.
오히려 외국에 나가면 한국관광공사 사장인 그가 더 이채롭게 보여진다. 지난해 10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UN WTO 총회에 참가했을 때 한국을 대표해 인사말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자 다른 나라 참석자들이 "어! 한국인이 아닌데…"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참 사장은 이때 한국의 의료기술도 자랑하는 재치를 발휘했다. "제가 한국의 발전된 성형기술로 얼굴을 바꿨습니다. 한국으로 의료관광 오세요." 장내에는 웃음이 넘쳐 흘렀고, 그제서야 이참 사장은 자신이 한국인이고 푸른 눈의 공기업 사장임을 밝혔다.
대구경북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이참 사장을 이달 11일 한국관광공사 사장실에서 만났다.
◆대구경북의 정신문화, "배울 게 많아요"
이참 사장에게 혹시 대구경북과 인연이 있느냐고 묻자 "많죠. 아주 많죠"라고 답했다. 다 말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 먼저 그는 유교문화의 본고장인 경북 안동과 영주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을 뿐더러 양반문화와 선비정신에 대해서도 깊이 알고 있었다. "선비는 생각을 많이 하고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는데, 바쁜 현대사회에 더 필요한 정신인 것 같아요." 그는 현재 퇴계학 진흥협회 이사도 맡고 있다.
안동이 지역구인 김광림 의원과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둘은 20년 전 '진돗개를 사랑하는 모임'을 하면서 우정을 쌓아왔으며, 지난 18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선 김 의원의 유세 지원에 이참 사장이 팔을 걷고 나섰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안동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안동·영양의 고춧가루와도 인연을 맺었다. 현재 공사 면세점을 통해 판매하고 있는 프리미엄 고춧가루 브랜드 '코칠리'(Kochilli)는 지역의 한 태양초 전문 재배업체와 손잡고 개발해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해외 출장시에도 항상 고춧가루를 가지고 다니며 경북 북부의 좋은 고추를 홍보한다.
인연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말 2011 대구 방문의 해 및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 성공을 위해 대구시와 협약을 맺고 관광 홍보 및 마케팅 협력에 나서기로 했다. 2011 독일여행업협회(DRV) 총회 대구 유치에도 자신이 태어난 독일의 여러 루트를 통해 협력을 요청해 대구시에 음으로 양으로 큰 도움을 줬다. 내년에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대구경북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을 집중할 계획이다.
깊은 인연만큼 대구경북 관광활성화를 위해 과감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낮에도 재미있고 밤에도 신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의료관광도 첫째 목적은 즐거움입니다. 낮에는 경북의 아름다운 곳을 연결시켜 관광을 하고, 대구에서는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멀리 내다보면 국내 카지노 등도 활성화돼야 합니다."
◆생각과 실제는 다르죠, '그래도 바꿔'
이참 사장은 한국의 노동시간과 관련해 재밌는 비유를 했다. 한 스님으로부터 들은 얘기라고 출처부터 밝혔다. 두 나무꾼의 일 효율성에 관한 것. A나무꾼은 날이 밝아올 무렵부터 도끼를 들고 쉬지 않고 계속 나무를 잘라 땔감을 모으고, B나무꾼은 집중해서 10분만 일한 뒤 휴식하고 또 도끼날도 갈고 자연도 감상하며 쉬엄쉬엄 일했는데 날이 질 무렵 땔감의 양을 보니 B나무꾼이 2배가 많더라는 것.
그는 이 얘기를 하면서 한국 직장의 경직된 노동문화를 지적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지만 생산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충분한 휴식이 없으면 창의성, 새로운 아이디어가 고갈돼 업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한국의 경제활동인구 전체에게 1주일씩만 휴가를 더 줘 여행을 다닌다면 지역내 총생산(GRDP)이 6조원가량 창출되는 효과가 있으며, 34만여개의 일자리 창출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참 사장은 10개월 동안 휴가를 얼마나 다녀왔으며, 공사 직원들에게 휴가를 많이 줬느냐"고 맞받아 물었더니 그는 인터뷰 중 처음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10일 정도 휴가를 다녀온 것 같아요. 천안함 사태 때문에 이달 말까지 또 휴가를 못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전통적인 공직사회의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바뀔 거에요. 공사 직원들부터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진적 휴가문화를 정착시킬 겁니다."
그는 휴가의 형태도 앞으로는 '머무는 휴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가족·친구·직장 동료가 함께 한 곳에 놀러가면 그곳에서 며칠씩 먹고 자고 즐기는 휴가가 정착돼야 자신을 돌아보며 재충전하는 시간도 되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1석2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
독일인 '베른하르트 크반트'((Bernhard Quandt)가 아닌 한국인 '이참'인 그는 "우리나라 사람은 무엇을 해도 열정적"이라며 "그것이 바로 '흥'의 에너지인데 뭐든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경제발전도 단기간에 이루었고 월드컵을 비롯한 각종 스포츠에서도 남들이 기대하기 힘든 성적을 거두는 것"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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