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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성 털고 개방성 열망…긍정적 길거리 문화 창조

대구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월드컵 거리응원 장면.
대구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월드컵 거리응원 장면.

직장인 김우현(34·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씨는 이달 12일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대구 율하공원에서 펼쳐진 월드컵 길거리 응원에 참여했다. 주위에서 길거리 응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단지 호기심에 참여했지만 단 한 번으로 김씨는 그 문화에 푹 매료됐다. 김 씨는 "한마디로 별천지였다. 마음껏 소리치고 골을 넣을 때 땅이 흔들릴 정도로 환호하는 등 그야말로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한 자유를 만끽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6강전이 열리는 26일에도 길거리 응원에 참가할 생각이다.

대한민국이 길거리 문화에 빠져들고 있다. 2002년 월드컵 길거리 응원에서 촉발된 길거리 문화는 2010 남아공월드컵을 맞아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응원에서 한 단계 발전한 길거리 문화는 이제 각종 축제나 행사에서도 빠지지 않는 '팔방미인'이 됐다. 길거리 문화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폐쇄형에서 개방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길거리 문화에 빠지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시작된 길거리 응원은 이제 대중문화의 한 코드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대구에서는 12일 한국·그리스전에 7만7천 명이 응원에 참여했고, 17일 아르헨티나전에는 9만5천여 명이 모였다. 아르헨티나전 때는 전국적으로 200만 명가량이 길거리 응원에 참가해, 방방곡곡이 붉은 물결을 이뤘다. 23일 나이지리아전은 새벽에 열렸는데도 대구시민운동장에 2만2천 명이 운집해 응원을 펼쳤다.

길거리 응원은 평소 축구에 관심이 많지 않던 여성층과 단체응원에 익숙지 않은 중년층까지 끌어들였다. 여대생 이수영(21) 씨는 "승패보다는 노래 부르고 즐기는 응원문화가 좋아 참가했다"며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이 매력"이라고 했다. 나이 지긋한 중년들도 가족을 데리고 참여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자영업자 이병주(47) 씨는 "길거리 응원을 같이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뻥 뚫리면서 생활의 활력을 얻는다"며 "가족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것 자체로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라고 했다.

길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 각종 행사에서도 길거리 행사는 필수 사항이다. 한창 진행 중인 2010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도 올해 길거리 행사를 크게 강화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거리축제 '딤프린지'를 대구백화점과 2·28공원, 동대구역, 수성못, 두류공원, 동촌유원지 등 대구 시내 곳곳에서 열고 있다. 이현정 DIMF 공연팀장은 "이젠 사람들이 길거리 문화에 많이 익숙해졌다. 과거에는 길거리 이벤트를 하면 무엇을 하는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는데 지금은 생활 속 이벤트로 편안하게 생각하고 즐긴다"고 말했다. 얼마 전 끝난 동성로축제도 다양한 길거리 이벤트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축제 관계자는 "축제에 거리 행사가 대부분이다. 거리 행사가 많아지면서 매년 관람객도 늘어 올해는 사흘간 230만명 정도가 동성로축제에 몰렸다"고 말했다.

◆방에서 길거리로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방 문화가 매우 발달했다. 노래방부터 PC방, 찜질방, 스크린골프방 등 곳곳에서 '방'자가 붙은 간판을 볼 수 있다. 이는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혼자 노는 것보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해 여럿이 함께 놀 수 있는 방을 많이 찾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방 문화는 밀폐된 공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폐쇄적이고 일탈 잠재성을 안고 있는 등 부작용도 만만찮다.

열린 공간에서 이뤄지는 길거리 문화는 폐쇄적인 방 문화를 탈피하는 계기로 여겨지고 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는 보통 온라인에서 개인화하는 성향이 강한데 길거리 응원을 통해 갇혀 있던 욕구를 마음껏 밖으로 표출하는 것 같다"며 "최근의 길거리 문화는 우리 고유의 집단주의에 개방성이 가미된 진취적인 집단주의로 봐야 한다"고 했다. 또 길거리 문화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요즘 젊은세대의 욕구도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길거리 응원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도 긍정적이다. 직장인 권성모(37) 씨는 "얼굴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감성을 공유하는 것은 길거리 응원이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길거리 응원은 기쁨과 슬픔을 표출하고 나누는 흔치 않은 창고다"라고 했다.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가 이달 초 직장인 741명을 대상으로 월드컵 거리응원 문화에 대한 생각을 물은 결과 전체의 85.7%가 "사람들과 함께 신나게 응원할 수 있어 좋다"고 답했다.

허 교수는 "길거리 문화는 자칫 획일화된 집단주의로 빠지거나 지나친 상업화를 몰고 올 수도 있으나 잘만 승화시킨다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지역·계층 간 갈등을 줄이고 사회 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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