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6'25 비체험 세대

금년이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60주년이라 특별한 의미를 가져야겠지만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월드컵 기간 중인데다가 하필이면 금년 6월 25일이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조별 리그 최종 경기를 끝내고 16강 대결을 하루 앞두고 있는 참이라, 60주년이란 말은 정말 무색할 지경이 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월드컵 축구 열기가 아니더라도 60주년은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요즘 어린 학생들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누군지도 모른 채 막연히 김정일이겠거니 여기는가 하면 대학생의 50%가량은 6'25가 언제 일어난지도 모른다고 한다니까 월드컵에다 핑계 댈 것도 아니다.

젊은 세대가 갖는 6'25에 대한 무관심은 논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북에 의해 침몰한 천안함의 폭음이 채 가시지도 않았고 전반적인 안보관이 위태로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해도 마찬가지다. 어쩌겠는가.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6'25는 흘러간 역사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나는 1960년대생이다. 우리 세대에게 6'25는 간접 체험의 대상이었다. 어릴 때 불발 폭탄을 직접 목격한 적도 있었고 당시 전쟁터가 어떤 형편이었는지 아버지로부터 생생히 들을 수도 있었다. 나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으되 마치 전쟁터에 있었던 것처럼 기억에 간직돼 있는 '유사 체험' 세대인 것이다. 하지만 80년 이후에 태어난 지금 젊은이들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부모로부터도 6'25의 경험을 전해들을 수 없어 6'25는 단지 책에서나 얻는 지식처럼 역사적 대상에 불과해져 버렸다.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연도를 셈해 보면 80년대생 이후의 세대와 6'25의 시간적 거리는, 놀랍게도 우리 세대와 일제 강점기 초인 1919년 3'1만세 운동의 시간적 거리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우리 세대 가운데 3'1만세 운동에 대해서 통감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이번 주 초부터 매일신문에 연재되는 라는 6'25전쟁 실화를 가슴 사무치게 읽고 있다. 기사를 보면서 '경주 안강'기계전투'와 '다부동전투', '영천전투'가 최대 격전의 3대 전투임을 알게 되었다. 특히 내 고향에서 벌어졌던 '영덕 장사 상륙작전'이 맥아더 장군에 의해서 시도된 인천 상륙작전과의 양동 전략이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한 기억의 페이지를 넘겨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격전의 현장을 읽으면서 이렇게 절실히 감동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부모님의 경험이 어린 시절부터 내 속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간이 귀로 들었던 부모님의 장사 피란길과 폐허가 된 포항시의 정경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직접적인 경험자가 아니어서 안타깝게도 내 자식에게는 6'25의 실황을 생생히 물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한 인간의 기억의 폭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부모가 체험한 것을 넘어서기 힘들다. 기억을 근거로 인간의 정체성이 형성될진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부모가 태어난 시기보다 더 일찍 발생한 사건은 어떤 경우든 자아(自我) 형성에 별다른 기여를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전쟁 세대들은 두 세대 아래의 지금 젊은이들이 6'25를 느끼지 못한다고 나무라서는 곤란하다. 그런 꾸짖음은 균형감각도 맞지 않을뿐더러 세대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지식은 물려줄 수가 있어도 경험은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는 법이다.

이쯤 되면 6'25는 대략 난감해진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을 세습하고 있는 현 북한 권력 체제가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비체험 세대에게 경험을 강요할 수도 없고 흐트러지는 안보관을 내버려둘 수도 없다.

따라서 6'25에 대한 다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비체험 세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6'25의 공감을 얻어나가야 할 것 같다. 가령 6'25라는 역사를 보편적인 전쟁의 참혹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든가, 전쟁을 일으켰던 북한 권력 체제의 현재성을 드러내 보이도록 하는 게 그런 예가 될 것이다. 금년부터 경상북도에서 추진하려는 낙동강 '호국평화벨트' 사업도 이런 측면에서 주목한다. 전쟁의 잔혹함과 미래지향적인 평화 수호에 초점을 맞춘다면 6'25 역사관은 여전히 비체험 세대에게도 공감의 장소가 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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