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이마트가 자사의 가격경쟁력을 광고하면서 노골적으로 다른 업체들을 거론해 경쟁사들이 발끈하고 있다. 이마트의 광고가 사실보다 과장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 홈플러스는 공정거래위에 제소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 "다른 업체보다 우리가 싸다"
신세계 이마트는 24일 일부 신문을 통해 '이마트 가격혁명이 2010년 상반기 대한민국 물가를 내린 것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라는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이 과정에서 자사의 가격경쟁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마트 고객님은 A사 2만3180원, B사보다 2만2550원 낮은 가격에 쇼핑하고 계십니다'라는 노골적인 문구까지 넣었다.
이마트는 상세한 설명도 덧붙였다. 이마트와 타 대형소매점에서 실제 판매되고 있는 30개 주요 생필품 장바구니 가격을 4주간 비교한 결과라는 것. 대표 상품은 농심 신라면과 삼양라면, 제주 삼다수, 서울우유, 코카콜라 등 30여 개로 '한국소비자원이 선정 조사한 생필품 대표 상품'이며, 조사를 위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1일까지 주 2, 3회 각 업체 10개점을 돌며 가격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이마트에서는 동일한 품목을 쇼핑하는데 18만9천440원이 들었지만 A사는 21만2천620원, B사는 21만1천990원이 소요됐다는 것을 카트 그림과 함께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직접 업체명을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대형소매점이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3강 체제인 만큼 직접 총구를 겨냥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유통업계의 반응이다.
하지만 업계는 이런 이마트의 광고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품목만을 골라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말부터 매주 가격을 조사해 공개하는 생필품은 244개에 이른다. 홈플러스는 "대형소매점에서 주로 취급하는 상품은 150여 개 정도인데 이 중 30개만 임의로 뽑아 광고에 싣는 것은 근거가 미약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소비자원은 "244개 품목 모두 중요한 생필품이어서 따로 몇 개를 뽑아 비중을 두기는 어려우며, 특정 브랜드를 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격할인, 실상은?
홈플러스는 정면대응에 나섰다. 광고게 게재된 이달 24일, 홈플러스 임직원 200여 명이 전국 125개 이마트 점포를 돌며 2천500여만원의 비용을 들여 해당 상품 30개를 각각 구매해 영수증을 비교해 검증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홈플러스는 "일부가 공시가격보다 최대 28.4% 비싸게 판매되는 등 광고 내용 일부가 허위였다"고 지적했다.
홈플러스 조사에 따르면 이마트가 판매중인 '오뚜기 딸기잼'(500g)은 24일 이마트 수지점에서 광고에 공시된 2천570원보다 28.4% 비싼 3천300원에 판매됐고, 다른 119개 점포에서도 공시가보다 20.6% 높은 3천1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농심 삼다수'(2ℓ)와 '코카콜라'(1.8ℓ) 등이 각각 21개, 13개 점포에서 공시가 대비 6.6%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 '삼양라면'(5입), '남양유업 NEW임페리얼분유XO 1단계'(800g) 등도 일부 점포에서 공시가보다 비쌌다.
지역별 가격 편차도 심해 코카콜라(1.8ℓ)는 강원도와 제주도에서 다른 지역보다 20.5% 비쌌고, 농심 삼다수(2ℓ)는 전라도와 강원도에서 가격이 9.5% 높게 책정되는 등 총 16개 품목이 지역별로 가격 차이를 보였다.
아예 없는 제품도 있었다. '아모레퍼시픽 메디안크리닉플러스'(160g×3) 치약은 23개 점포에 재고가 없는 상태였고, 66개 점포에서는 아예 취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 '종가집 국산콩두부'는 46개 점포, 'CJ라이온 비트리필'(3.2㎏)은 23개 점포에서 결품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는 "총 30개 상품 중 8개를 제외한 22개 상품에 대해 특정 지역 소비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이마트는 "오뚜기 딸기잼은 광고가 나간 후 해당 제조업체가 대형소매점 3사의 판매가격을 모두 인상했고, 아모레퍼시픽 메디안크리닉플러스는 업체 측이 생산을 중단했으며 일부 상품은 점포별로 재고가 모두 소진됐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하지만 이마트가 지난 4주간 총 10차례에 걸쳐 가격을 비교한 내용은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경쟁도 좋지만 윤리는 지켜야
이런 진흙탕 싸움에 소비자들은 혀를 차고 있다. 올 초 이마트가 시작했던 가격할인 경쟁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주부 김은아(37)씨는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대형소매점들이 서로 싼 값에 판매한다고 우겼던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가격까지 공개해가며 치졸한 싸움을 벌이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판단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영주(44·여)씨도 "올 초부터 지나친 가격경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당장 소비자 입장에서는 싼 값에 쇼핑을 할 수 있어 좋지만 대기업이 손해를 보진 않을 테고, 결국은 납품업자나 농민, 소비자들에게 그 비용이 전가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며 우려했다.
소비자단체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안재홍 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처장은 "소비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는 대형소매점이 이렇게 왜곡된 정보를 내놓은 것은 판매자로서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행위"라며 "상도덕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대기업들이 이렇게 윤리마저 저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용진 이마트 부회장은 "윤리경영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신세계 주가 상승분의 절반 정도는 윤리경영 덕"이라고 말한 바 있다.
홈플러스 마케팅부문장 안희만 전무는 "업계 선두기업인 이마트가 총 6만여 개에 달하는 판매 상품 중 고작 30개 품목만을 임의로 선정한 비상식적인 비교 광고를 통해 홈플러스 가격 이미지에 피해를 주고 있다"며 "객관성이 확보되지 않은 내용의 광고는 모든 경쟁사의 가격에 대한 소비자 불신을 초래할 소지가 있는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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