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불문하고 예술 작품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하나 지니고 있다. 그것은 작품을 처음 대면했을 때와 대면이 끝났을 때로 나뉜다. 먼저 처음 대면했을 때 작품으로부터 이야기가 흘러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졸졸, 혹은 와락 흘러나와 숨어있던 나의 이야기를 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첫째 기준의 연장이기도 한 것으로, 작품과 헤어져서도 잔영이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쉬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마음을 뜨겁거나 서늘하게, 하지만 결국 고요하게 하는 작품에 끌린다. 공연이나 전시에 갔을 때 나의 이러한 기준에 맞는 작품을 만나면 마음이 그득해진다.
텔레비전의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블루스 특집을 하고 있었다. 국내의 내로라 하는 기타리스트들이 각자 몇 곡씩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이름이 생소한 한 기타리스트가 나와 연주를 하였다. 그의 연주를 조금 듣는 순간 앞의 멋진 연주들이 가물거리며 뒷걸음쳤다. 밥을 먹으면서 보던 나는 절로 수저를 놓고 말았다. 그 기타리스트가 치는 음은 소리와 소리 사이, 무엇보다 소리의 끝이 달랐다. 손가락이 기타 줄을 벗어난 후의 여음이 깊고 아름다웠다. 연주가 끝나도 마음에는 멜로디가 이어지며 멜로디가 사라져도 내 안에서 생성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한 곡처럼 여겨졌다.
최근 한 미술시장에 갔을 때다. 일전에 신문 기사를 읽고 한 번은 보고 싶던 도자기 작품이 그곳에 있었다. 다른 작품들에는 미안하지만 백색의 둥근 그것을 보는 순간 그 이전에 본 모든 작품은 내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슬아슬한 비대칭의 곡선이 만드는 긴장감, 그 긴장감 안의 능청스러움, 모든 색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백색의 당당함, 뽐내지 않는 여유만만한 자태. 쓰다듬고 싶고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탐심은 이내 사라졌다. 만남 자체가 더욱 크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내 달항아리 생각이 났다. 소파에 앉았을 때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그것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가 그것을 안으면 그 둥근 선이 내 갈비뼈 밑을 지그시 누르며 다가오겠지…. 며칠 동안 백자 달항아리의 여운 안에서 지극히 단순해지고 맑아지는 듯하였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 있으면 즐겁다. 또한 집으로 돌아와서도 만남의 기운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그럴 때는 잠시나마 아무 일 하지 않고 가만히 그 사람의 여운을 즐긴다. 그때 세상도 나를 도와서 함께 고요해진다.
추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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