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깊은 생각 열린 교육] 대구에서'좋은 책', 서울에서는'기적의 책'

글쓰기는 인간의 표현 욕구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글쓰기는 쓰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쓰는 괴로운 행위가 아니라, 쓰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한다. 즐거워야 할 글쓰기가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괴로운 일이 되는 경우가 있다. 별로 쓰고 싶지 않거나 할 말이 없는 대상에 대해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키는 것이다. 오히려 어른들이 써야 할 글을 아이들에게 대신 쓰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단체나 기관에서 하고 있는 글짓기 대회나 공모에 의한 글쓰기가 그것이다.

한 가지 예가 '자연보호에 대한 글짓기'이다. 자연을 더럽힌 사람은 어른들이다. 더럽힌 자연을 깨끗이 해야 할 책임도 당연히 어른들에게 있다. 자연보호에 대해 글을 써야 할 사람은 아이가 아니다. 어른들이 써야 반성도 하게 되고, 제대로 된 실천 방안도 나온다. 그래야 진정 자연보호를 위한 대안도 찾을 수 있다.

이런 유형의 글들은 아이들이 쓰고 싶은 글이 아니다. 숙제라서 또는 상을 받기 위해서 억지로 짓는 글들이다. 칭찬을 받기 위해서, 상을 받기 위해서 글짓기를 하면 그것을 위해 필요한 틀에 맞추어 꾸며 쓴다. 진실한 체험 없이 꾸며 쓰는 글짓기로 쓴 글은 자신은 물론이고 남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다.

자연보호가 아이들의 글쓰기가 되려면 자연보호에 대해 아이들이 진정으로 관심을 가질 때까지 어른들이 기다려 주어야 한다. 자연보호에 대해 아이가 보고 듣고 알게 된 것, 느끼게 된 것을 쓸 수 있는 만큼 쓰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존재할 수도 있다. 어느 날 강가에 가서 썩은 물 때문에 죽은 고기를 보고 '아! 물고기가 불쌍하다'는 마음이 생기면 아이들은 그 마음을 글로 옮긴다. 체험은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다. 아이들은 아는 만큼 쓴다.

대구교육청에서는 2007년부터 아이들이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또래 학생들의 글을 보기글로 사용한 글쓰기 워크시트 8종을 만들어 보급하였다. 초등학교 1학년이 사용하는 '나도 쓸 수 있어요'에는 1학년이 써 놓은 한 줄 짜리 글도 많다. '글이 막 쓰고 싶어요'를 비롯한 나머지 워크시트도 대부분 지은 글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쓴 글이다. 초등학생은 연간 20편, 중학생은 연간 10편의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은 9년 동안 150편의 생활 글쓰기를 할 수 있다. 해마다 3억원 이상의 막대한 돈을 들여 26만부 이상 인쇄하여 4년째 전학생에게 배부하고 있다. 칭찬에 인색한 대구 지역의 특유한 정서 탓인지, 대구 학교에서는 그저 '좋은 글쓰기 책'이라는 반응에 그치고 있지만 서울의 몇몇 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이 3년째 사용하면서 '기적의 글쓰기 책'이라 극찬하고 있다. 서울 선생님처럼 글쓰기 워크시트를 보고 '기적의 글쓰기 책'이라고 감동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대구에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21세기의 글쓰기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것이 되어야 한다. 즐거운 것이 되려면 쓰라고 강요하기보다 글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도록 해야 한다. 글과 친하게 하려면 재미있는 글을 보여 주어야 한다. 특히, 또래 아이들이 쓴 글을 많이 보여 주어야 한다. 친구가 써 놓은 재미있는 글을 통해 '글이란 재미있는 것이구나!', '나도 저 정도는 쓸 수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바로 거기에 아이들이 글쓰기를 즐겁게 시작하는 길이 있다.

한원경(대구시교육청 교육과정담당 장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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