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국가 간의 싸움인 동시에, 해당 국가에 속한 개인의 삶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더욱 처절하다. 국가 간 문제에 전쟁의 초점을 맞출 때, 그 시작과 끝은 구분이 용이하지만,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출 때 '종전'의 시점을 찾기는 어렵다. 개인이 살아 있는 한, 어쩌면 2세에게까지 전쟁의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국전쟁과 관련한 논의들은 대부분 전쟁의 원인, 발발, 전개과정, 휴전 등 전쟁의 과정과 성격을 정치사적으로 다루는데 집중돼 왔다. 물론 군인, 경찰, 유엔 참전군인, 피란민, 피학살자를 다룬 이야기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연구 역시 국가 또는 남성이 중심이었다. 때때로 전쟁과 관련해 '여성'들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때의 여성은 '남성 전쟁의 폭력성'을 보여주기 위한 '배경'으로 소비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등장하는 전쟁 속 여성은 '풍기문란의 대상' '동정의 대상' 등 전쟁 주체 혹은 정치 주체의 삶을 보여주기 위한 '타자'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쳤다.
이 책 '전쟁 미망인, 한국 현대사의 침묵을 깨다'는 '전쟁이 개인, 특히 남편을 잃은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정면으로 다룬다. 국가 폭력, 가족, 침묵, 여성의 노동 등 '전쟁 미망인' 앞으로 집결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를 보여주기 위해 군경 미망인, 피학살자 미망인, 상이군인 미망인과 그 자녀 등 45명을 인터뷰했다.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전쟁 미망인은 최소 3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중략) 이들은 부양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어떤 이는 10년이 넘어서야 남편이 학살됐음을 알았고, 어떤 이는 남편이 강제징집당한 뒤 3년이 지나서야 행방불명됐음을 알았다.'
바야흐로 국가 간의 전쟁이 '개인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지점'이다. 전쟁은 국가가 시작하지만, 그 책임과 피해는 개인이 입어야 한다는 속성을 갖는다. (물론 개인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설령 국가 지도자가 결정한 전쟁이라고 할지라도, 혹은 피침략국이라고 할지라도 전쟁 수행의 책임이 지도자에게 한정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책은 전쟁의 원인이나 책임, 전개과정이 아니라 '개인의 삶 속으로 침투한 전쟁'에 대해 '전쟁 미망인'을 통해 살펴본다.
전쟁 미망인(여기서는 남편이 죽지 않았더라도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입은 경우까지 포함)들은 가족 부양의 책임을 져야 했다. 남편이 없기에 자식과 시부모들을 부양해야하는 경우도 있었고, 남편이 살아 있기는 했으나 노동력이 없었기에, 남편의 몸을 돌보면서 부양까지 책임져야 했던 경우도 많다.
전쟁 미망인들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했다. 시댁과 남편은 전쟁 미망인인 그녀들이 이른바 '바람 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전쟁 미망인으로 하여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 돈을 벌어올 것을 원하면서도, 옆길로 새지 않을까 의심의 눈초리를 던졌다. 시댁과 남편은 그녀들의 외양을 통제하고, 시간을 통제하고, 노동가치를 평가절하했다. 예컨대 조금만 늦게 들어오면 왜 늦게 들어오느냐고 따졌고, 집 밖으로 나가면 어디로 가는지 살폈다. 떼인 돈을 받기 위해 남자를 찾아가면 '남자가 좋아서 좇아다닌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녀들이 밤낮없이 농사일을 해서 쌀을 가져왔을 때, 시부모는 '내 논에서 나온 쌀로 밥을 먹는데, 네가 벌어서 (우리 식구가) 밥을 먹느냐'는 식으로 폄훼하기도 했다.
남편이 전사한 경우 충격이 훨씬 컸지만, 살아가는 동안에는 차라리 남편이 전사하고 없는 쪽이 유리한 면도 있었다. 육체적으로 상처 입은 채 살아남은 남편은 업고 가야 할 짐이자, 잠들지 않는 감시자였다.
시가 입장에서는 살뜰한 애정을 나눌 남편도 없고, 남편이 벌어오는 돈도 없는 처지의 며느리를 잡아두기 어려웠다. 그래서 시가는 철저한 감시와 통제로 미망인을 억압했다. 감시와 통제를 통해 '며느리 만들기'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 긴 세월 동안 '전쟁 미망인'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불거져 나오지 않았던 것은 상처 입은 남편과 시댁의 끝없는 감시와 부양을 위한 쉼 없이 행해야 하는 노동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남은 자식을 제대로 길러야 한다는 의무감도 전쟁 미망인을 잡아두는 역할을 했다. 이런 경우를 싸잡아 '억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전쟁 미망인에게 드리워진 '삶의 멍에'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국가 역시 전쟁 미망인의 고통과 숫자를 외면함으로써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전쟁 미망인의 희생을 강요한 것은 시가나 남편, 국가뿐만이 아니었다. 친정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시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딸에게 친정아버지는 이렇게 꾸짖었다. "저 혼자 참고 희생하면 이짝(쪽) 저짝(쪽) 집안 다 사는 것을, 저 혼자 살려고 이짝 저짝 집안 다 망치려 드느냐!"
이 책은 '전쟁 미망인'의 삶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책 속 여성들이 받았던 압제는 다만 '전쟁 미망인'에 한정되는 경우가 아닌 것들도 많다. 시댁과 남편의 감시, 쉼 없는 노동, 부자유, 딸 아이 유산 혹은 살해 시도 등은 '전쟁 미망인' 뿐만 아니라, 가난한 한국 사회의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일반적인 폭력에 해당한다. 경제적으로 못 사는 나라, 그래서 생활수준과 민도가 극히 낮은 나라에 흔히 등장하는 폭력인 셈이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폭력, 여성의 고된 노동, 감시 등은 지금도 존재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매 맞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는 아내와 매 맞지 않는 날을 상상할 수 없는 아내가 함께 사는데 서로 잘 모를 뿐이다.)
지은이 이임하는 1965년 전남 영광 출생으로 '한국 현대사와 여성'에 천착해온 역사학자다. 1950년대 한국전쟁과 여성, 여성의 경제활동과 지위 변화, 성 담론 등 한국 현대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 책 '전쟁 미망인…'을 집필하기 위해 5년 동안 45명을 인터뷰했고 알아듣기 힘든 인터뷰 자료를 쉽게 정리했다. 각각의 인터뷰 자료를 좀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전후 사정에 대한 정보도 곁들였다. 407쪽, 1만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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