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안부를 묻다/백찬홍 지음/평사리 펴냄
불교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지 1천700년, 가톨릭은 200여년, 개신교는 100여년, 이슬람은 50여년이 됐다. 어느 사회에서나 종교는 순기능과 역기능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물론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기준과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지은이가 주장하는 종교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종교는 '구국의 종교'로 기능했고, 교육의 기능, 문명사회 건설 이바지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다양한 종교가 있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며, 종교인도 많다. 종교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어느 사회 못지않게 막강하다. 물론 종교로 인한 문제도 많고, 종교 간의 갈등도 만만치 않다.
종교의 가치가 다양하게 향유되고,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지수가 얼마나 높은지는 의문이다. OECD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 우리 사회의 바닥을 갉아먹고 있는 절망과 고통은 깊고 크다.
지은이는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천국, 불신지옥' 과 같은 수준에서 벗어나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제목으로 언급된 '종교의 안부'는 말하자면 '한국의 종교,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떤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거대한 이념의 성체 안에서 종교 교리를 둘러싼 추상적인 논쟁을 펼치기 이전에 저잣거리에 내려선 종교와 사회적 접점을 확인하고, 정당성을 따져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찍이 공자는 제자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을 묻자 "산 사람을 섬기는 일도 모르는 데 어찌 죽은 귀신을 섬긴다는 말이냐"고 답하고 "삶도 알지 못하는 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고 답한 바 있다. 초월적인 문제보다 현세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내세와 최후의 심판을 강조하는 기독교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 현세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예수가 귀신을 축출한 것은 민중들의 현실적 고통을 풀어주고자 함이었지 저 세상을 강조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지은이는 "어떤 종교든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종교는 없다. 종교는 내세를 심판하는 장이 아닌 현재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주는 곳으로 이해돼야 하고, 자신과 이웃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1가지 주제로 읽는 우리 시대 종교의 속살'을 부제로 달고 있는 이 책은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는 종교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파헤치고 있다. 책은 특히 소수자의 인권, 생태친화적인 삶, 바른 세상을 위한 영성 회복, 성직자에 의존한 삶의 탈피 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은이는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를 향해 던지는 독설과 비판에는 날이 서 있다.
이 책을 추천한 김인국 신부는 "사람의 존엄을 드높이자는 게 종교라면 돈을 주인으로 삼으려는 자본주의와는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는 종교의 운명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개의 종교들이 자본을 찬미하거나 맥없이 돈을 편들고 있다" 며 "지은이 백찬홍은 종교의 본령이 무엇인지 매섭게 따져 물으며, (종교를 향해) 제발 사람 곁으로 돌아오라고 목청을 높인다"고 평했다.
책은 크게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독선과 편협한 종파주의를 넘어 영성을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을 주제로 한다. 2부에서는 종교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과 혼란을 다룬다. 3부에서는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종교 간의 분쟁과 해결책을, 4부에서는 종교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 5부에서는 종교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는 이방인들을 조명하고, 이들을 보듬는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체적으로 이 책은 우리나라 '종교(특히 개신교)'를 '비판'하면서, 반자본(물신 패권주의 반대), 자연 친화적 삶, 적극적 사회참여, 소수자 인권 보호, 종교권력 비판 등에 주목하고 있다. 시민운동의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지은이 백찬홍은 한국외대와 감리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목회 활동보다 기독교사회운동에 투신했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 상임총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의원, 국제위원으로 활동했다. 시민사회 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 '시민의 신문' 상임이사로 활동했다. 304쪽, 1만3천8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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