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전히 넋을 잃었다. 동굴에 숨겨진 고문서들은 어림잡아 1만5천~2만 부는 됨 직했다. 하나하나 펼치면서 살펴보려면 최소 6개월은 걸릴 것으로 생각했다. 촛불 하나만을 밝힌 채 쪼그리고 앉아 먼지투성이의 문서 꾸러미들을 뒤지면서 길고 숨막히는 3주를 보냈다." 하노이 프랑스 극동학원의 중국어 교수였던 폴 펠리오가 프랑스의 저명한 동양학 학자 에밀 세나르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펠리오가 돈황 천불동 고문서 굴을 지키던 도사 왕원록으로부터 500량(약 90파운드)에 사들인 24상자 분량의 이 고문서 중에는 한자와 히브리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소그드어로 쓰인 각종 필사본들이 포함돼 있었다. 펠리오는 이 문서들을 증기선으로 실어내 1909년 파리의 국립도서관 창고에 보관했다. 이 고문서 가운데 우리의 눈길을 끈 기록물이 있었다. 책명과 저자만 알려져온 혜초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1909년 12월 소르본대학이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하고 공개함으로써 세상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신라 승려 혜초(慧超'704~787)의 인도 기행기인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지 100년 만에 마침내 한국 땅을 밟는다. 프랑스 측이 어저께 왕오천축국전을 한국에 대여 전시키로 결정함으로써 12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실크로드와 돈황' 특별전 때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다섯 천축국을 여행하며 쓴 '왕오천축국전'은 원래 3권이었으나 실물이 전해지지 않았다. 펠리오가 돈황 석굴에서 앞뒷장이 훼손된 채 남은 총 227행, 5천893자의 두루마리 필사본을 발견함으로써 비로소 빛을 본 것이다. 약본이지만 8세기 인도와 서역의 정치와 문화'경제'풍습 등을 엿볼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선조가 1천200여 년 전에 남긴 귀중한 사료를 이 땅에서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설렘을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문서 등 우리 문화재들이 타국살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왕오천축국전의 첫 한국 나들이는 그만큼 의미가 남다른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1천700여 점의 서역 유물인 오타니 컬렉션과 등가물 교환 형식으로 한국에 영구 전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1천200여 년 만의 귀향을 그냥 보고 흘려버리기에는 안타깝기에 하는 말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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