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신체형과 권력의 실패

근대 이전까지 범죄에 대한 처벌 중에는 범죄자의 신체에 직접 벌을 가하는 형벌이 많았다. 형벌의 목적을 교화나 치료가 아니라 징벌 자체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을 적용한 함무라비 법전의 동해보복(同害報復) 원칙은 오래도록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중국 고전에는 5형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목숨을 뺏는 사형, 생식능력을 거세하는 궁형,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 코를 베는 의형, 살을 파낸 자리에 죄명을 찍는 경형 등 하나같이 끔찍하다. 사마천의 '사기'에 빛을 더해 주는 것은 사형 이상의 고통과 불명예가 따르는 궁형을 당한 이후의 노작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법률이 당률(唐律)과 대명률(大明律) 등으로 발전함에 따라 우리 법제도도 신체형을 태(笞)와 장(杖)으로 완화시키고 자유형인 유(流)와 도(徒)를 도입했지만 몸에 가하는 육형(肉刑)이나 동해보복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 초 도둑이 횡행하자 절도 3범은 섬으로 보내는 전례를 두고 발꿈치를 자르는 단근형을 100년 가까이 시행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성폭행 사건인 '범간'(犯姦)에 대해서는 더욱 가혹했다. 강간은 교수형, 근친 강간은 목을 베는 참형에 처했고 유아 강간은 예외 없이 교형이나 참형을 선고했다. 정약용이 지은 법률서 흠흠신서에도 강간범을 때려죽인 자를 처벌하지 않거나 가벼운 형에 처했다는 내용이 다수 나온다. 태종 이방원의 핵심 측근이었던 이숙번조차 노비를 강간하려다 이마에 칼을 맞았으나 죄를 묻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저께 우리 국회는 성폭력 범죄자에 대해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가권력이 감옥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교화와 사회 순응이라는 쪽으로 형벌의 방향을 선회한 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신체형을 도입했다는 건 여론의 환영 여부를 떠나 일종의 권력 실패다. 교정행정이 무기력해지고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책임을 범죄자 개인에게 전가하려는 혐의가 짙다. 하루 대부분을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있는 방임 아동이 100만 명을 넘는 현실에서 형벌 하나 도입했다고 떠들어대기는 낯 뜨겁다.

김재경 특집팀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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